HGUC 퍼스트건담 리바이브 토이






연말에 또 하나 장만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뮤직박스: 지금 당신은 시대의 눈물을 본다. 영화








요즘 사람들은 제시카라고 하면 걸그룹 소녀시대의 멤버 중 한 명이었던 제시카를 머리 속에 먼저 떠올리겠지만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제시카라는 이름을 들으면 영화 약속 OST 수록곡 굿바이를 부른 외국 가수 제시카를 떠올리곤 했을 것이다. 그 이전인 1980년대에는 제시카란 이름에서 제시카의 추리극장이나 킹콩(1976)과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의 여주인공 제시카 랭을 떠올리곤 했었는데 미스 마플이 등장하는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제시카의 추리극장을, 아름다운 금발 여배우의 매력을 선호하는 사람은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에서 치명적인 섹시함을 보여줬던 제시카 랭 쪽을 떠올렸으리라.

바로 그 매력적인 할리우드 여배우 제시카 랭이 출연했던 영화 중에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의 뮤직 박스란 영화가 있다.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은 군부독재 하에서의 어두운 정치 상황을 영화로 그려냈던 감독으로 그의 영화 Z(제트), 자백, 계엄령, 미싱(의문의 실종) 등은 당시 국내 상황이 상황이었던만큼 해당 영화를 수입하는 쪽도 영화를 상영하는 쪽도 영화 광고를 해야하는 쪽도 다들 부담스러웠을 터였다. 하지만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이 할리우드로 건너가서 만든 영화 뮤직 박스는 직접적으로 군부독재를 겨냥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그리고 영화 킹콩과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로 이름을 널리 알려 놓았던 인기 여배우 제시카 랭이 출연하고 있기 때문에 보다 쉽게 우리나라 영화팬들과 만날 수 있었더랬다.

흥겨운 파티 장면으로 영화 뮤직 박스는 시작된다. 나이 지긋한 백발의 아버지(아민 뮬러-스탈)와 딱 봐도 똑소리 나게 생긴 딸(제시카 랭)이 다정히 함께 춤을 춘다. 아버지와 함께 춤을 추고 있는 이 여자 앤 탤버트(제시카 랭)는, 겉만 똑소리 나게 생긴 것이 아니라 미국 최고의 변호사로 이름난 법조인이란다. 단란한 이 부녀(父女) 사이에 법적인 문제가 끼여든다. 아버지 마이크(아민 뮬러-스탈)씨가 2차 세계대전 당시 학살자였다는 혐의를 쓴 것. 딸은 아버지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손예진과 김갑수가 열연을 펼친 한국영화 공범은 사실상 이 영화 뮤직 박스에서 기본적인 설정을 가져온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키아누 리브스와 알 파치노, 샤를리즈 테론과 코니 닐슨이 출연한, 테일러 헥포드 감독의 영화 데블스 애드버킷에서 법정 싸움에서 한 번도 패하지 않았던 불패의 변호사 케빈(키아누 리브스)이 그러하듯 뮤직 박스 속 변호사 앤 탤버트(제시카 랭)는 또 한 번의 법적인, 그리고 극적인 승리를 기록한다. 변호사 앤은 양민을 학살한 살인마라는 누명을 벗겼다고 기뻐한다. 앤의 아버지 마이크는 그런 딸의 모습을 보며 흐뭇해한다. 한국영화 공범에서 서둘러 이야기를 끝맺으려고 영화적인 무리수를 둔 것에 비해 이 영화 뮤직박스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그러나 묵직하게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재판정에서 수 십 년 전 과거의 피해자는, 애로우 크로스라는 조직의 일원으로서의 학살자로서의 마이크의 모습을 증언한다. 우리로 치면 김앤장 아니 그 이상의 뛰어난 변론 능력을 가진 일류 변호사 앤(제시카 랭)은 피해자들의 피눈물나는 증언이 이어지는 가운데에서도 꿋꿋이 아버지의 무죄를 주장한다. 줄리아 로버츠가 주인공을 맡았던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에서 주인공 에린 브로코비치가 그러하듯 불리한 상황을 딛고 자신이 주장하는대로의 법적 승리를 가져오는데 성공하는 앤(제시카 랭). 여기까지만 해도, 아버지의 누명을 벗겨 주려는 딸의 감동적인 법정 투혼 스토리가 되겠지만, 여기서 이야기는 한 단계 더 나아간다.

뒤늦게 그러나 너무 늦지 않게, 아버지와 딸 사이의 인간적인 감정 저 너머에 숨겨져 있던 진실이 뮤직 박스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아시아의 역사로 비유하자면, 중국 난징(南京)에서 중국인을 상대로 학살을 즐기며 웃고 있는 일본군의 사진 같은 것이 음악을 들려주는 조그만 자동 기계, 즉 뮤직 박스 속에서 하나둘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아버지의 무죄를 외치며 법정에서 그토록 거짓이라고 주장했던, 애로우 크로스 제복을 입은 아버지의 모습이 사진 속에 있다. 법정에서의 승리의 기쁨은 어느덧 그 이상의 슬픔과 분노가 되었고 오열은 그녀의 전신을 휘감는다. 당대 최고의 변호사였던 그녀는 결국 데블스 애드버킷(악마의 대리인)에 불과했던 것.

한국영화 공범에 모티브를 준, 하지만 최근작인 공범보다 훨씬 더 묵직한 완성도를 보여주는 이 영화 뮤직 박스는 영화 킹콩과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로 인해 금발미녀, 섹시스타로서의 이미지를 갖게 된 제시카 랭을 연기파 배우 반열에 올려 놓았다. 가해자로서의 증거가 들어 있던, 그리하여 진실을 세상에 알리게 만든 영화 속 뮤직 박스는 소설과 영화로 유명한 LA 컨피덴셜 속 롤로 토마시와 더불어, 현재는 가려져 있지만 언젠가는 드러나야할 어두운 과거의 진실을 얘기하는 영화적인 상징어가 되었다.

아버지의 무죄를 믿었지만 알고보니 내 아버지가 범인이었다는 뮤직 박스의 기본 스토리는 여러 영화에서 변주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시카 랭이 여주인공을 맡은 이 영화 뮤직 박스가 수 십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 영역의 최고 작품으로 손꼽히는 것은, 권력의 어둡고 단단한 벽을 향해 끊임없이 카메라를 갖다댄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의 진정성, 그리고 영화적인 원숙함이 있어서일 것이다. 젊은 감독의 치기 어린 연출로는 쉽게 따라잡을 수 없는 거장의 내공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 울림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 마음 속을 감동시킨다. 아니 어쩌면 감동 그 너머의 슬픔과 분노일지도 모른다.

여포의 죽음과 장료의 귀순, 조조의 격분 습작

여포는 두터운 갑옷 안에 딸을 업고 원술 진영을 향해 말을 달렸다. 그 어미 초선(貂蟬)을 많이 닮은 딸이었다. 여인이 입고 있는 비단옷에서 귀한 분내가 났다. 분내? 어쩌면 그것은 여인에게 흐르는 특이한 체취(體臭)였는지 모른다. 남자의 등에 업혀 갑옷에 싸인 채 급히 말을 타게 되니 긴장을 하게 되고 그 긴장감이 평소보다 많은 땀을 내게 하였으니 그것이 여인의 독특한 체취를 더 짙게 풍기게 하는지도 모를 일이리라.

그 체취는, 여포가 그 이복누이 원(媛)을 업고 정원(丁原)의 성(城)으로 말머리를 향했을 때도 맡아볼 수 있었던 체취(體臭)였다. 장건이 서역과의 교역로를 개척한 이후로 많은 호인(胡人)들이 한나라로 건너왔다. 여포의 배다른 여동생 원(媛)은 대월지(大月氏) 출신 어미를 닮아 이국적인 외모였다. 원(媛)의 어미는, 친어미가 일찍 죽은 여포를 친아들처럼 보듬어주었다. 때론 그 아비를 닮아 광포한 기질을 보여 주위의 수군거림을 받을 때에도 원(媛)의 어미만큼은 여포를 감싸주었다.

여포(呂布)의 아비 여패(呂沛)는 걸핏하면 술에 취해 폭력을 휘둘렀다. 가문에 전래되는 타고난 힘은 그럴 땐 오히려 단점이 된다. 두주불사 고주망태가 되어 행패를 부릴 때면 주변에 아무도 가지 못했다. 어린 여포에게 창을 던져 큰 상처를 입힐 뻔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포 역시도 아비의 주사를 피해 막사 밖에 있을 때였다. 여패의 막사 안에서 찢어질듯 울부짖는 여인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처절한 목소리였다. 원(媛)이었다. 원(媛)의 목소리였다. 원(媛)의 비명소리를 들은 여포가 여패의 막사 안에 들어갔을 때 술 취한 여패는 딸 원(媛)의 조그만 몸뚱이를 짓이기듯 뭉개고 있었다. 일찌감치 공맹(孔孟)의 학문을 배웠던 여포는 그 순간 맹자의 도(道)를 떠올렸다.

제선왕(齊宣王)이 맹자에게 묻는다.
"탕왕은 걸을 추방하고 무왕은 주를 쳤다고 하오. 그것이 사실이오?"
맹자가 답한다. "그것은 경전에 기록되어 있는 바입니다."
제선왕이 다시 묻는다. "신하가 그 임금을 죽임이 가히 옳다고 할 수 있겠소?"
맹자가 대답한다. "인(仁)을 해친 자를 적(賊)이라 할지며 의(義)를 해친 자를 잔(殘)이라고 할 것입니다. 잔적(殘賊)을 행하는 자는 일부(一夫)인 것일지니 일개 범부(一夫)를 죽인 것이지 어찌 임금을 죽인 것이라 하겠소이까."

군사부일체의 시대, 잔적(殘賊)을 행하는 자는 더 이상 임금도 아비도 아니다. 일개 범부인 것이다. 인륜(人倫)의 도를 어긴 범부(凡夫)의 죄를 죽음으로 다스리는 것이 어찌 맹자의 도에 어긋나는 행동이겠는가. 여포는 막사 입구에 있던 검(劍)을 치켜들고 아비에게로 다가갔다. 색정(色情)에 눈이 먼 여패는 여포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여포의 검(劍)이 아비의 옆구리에 박혔다. 여패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더니 되돌아섰다. 여포는 옆구리에 박힌 검을 뽑아 복부에 꽂았다. 여패의 두 손이 여포의 목을 움켜쥐었다. 여포와 여패, 두 부자(父子)의 눈알이 시뻘겋게 충혈 되기 시작했다. 여포의 얼굴은 붉다 못해 보랏빛이 되었다.

여포는 여패의 복부에서 검을 뽑았다. 핏줄기가 솟구쳤다. 여패는 머리통으로 여포를 들이받았다. 코에서 피를 흘리며 여포는 바닥에 나뒹굴었다. 여포가 떨어뜨린 검을 여패가 손에 쥐었다. 검을 쥔 여패가 쓰러진 여포를 찌르려할 때 원(媛)이 급히 몸을 날렸다. 원(媛)의 몸에 박힌 검을 뽑기 위해 여패가 안간힘을 쓴다. 원(媛)은 두 손으로 검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아니, 더 깊이 자신의 몸에 박아 넣는다. 원(媛)이 여패의 칼을 잡고 있는 동안 여포가 여패의 목을 다시 조르기 시작했다.

"잔적(殘賊)! 이놈의 잔적(殘賊)!"

여패의 눈에 흰자위만 보이더니 '쿵' 소리와 함께 쓰러진다. 쓰러진 여패의 머리통을 여포가 주먹으로 내려치길 여러 차례. 이미 주위는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정신을 차린 여포가 원(媛)을 바라봤을 때 원(媛)의 몸은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호인(胡人)의 피가 섞인 원(媛)의 이국적인 얼굴에는 생기가 사라져가고 있었다. 여포는 원(媛)을 들춰업고 막사 밖으로 나왔다.

"의원, 의원은 어디 있느냐? 죽어가는 사람도 살릴, 용한 의원 말이다."
"정원, 정원의 성(城)에 용한 의원이 있다고 들었나이다. 쌀 다섯 말이면 죽어가는 사람도 살린다고 하옵니다."
"어서 말을 대령하라!"

여포는 원(媛)을 들춰 업고 그 위에 갑옷을 걸쳤다. 군벌 정원(丁原)의 성(城)으로 여포가 탄 말이 향했다. 여포의 등에 업힌 원(媛)의 몸에선 묘한 향내가 났다. 선혈의 훈기(薰氣)가 더해져 그 향은 짙어졌다. 그 향(香)은 동탁의 어린 시녀 초선(貂蟬)에게서 맡을 수 있었던 향내와 같은 것이었다.

‘원(媛)? 원(媛)이란 말인가. 원(媛)이 다시 태어났단 말인가?’
여포는 멀리서도 그 향(香)을 느낄 수 있었다.

‘초선에게도 대월지(大月氏)의 피가 섞인 것일까...’
여포는 운명(運命)이라 여기고 금률(禁律)을 깨고 초선의 침실에 들어갔다. 난폭하고 비대한 동탁이 침실에 머무르고 간 뒤 초야(初夜)의 고통을 잊지 못해 울고 있는 초선을 여포가 보게 된 것은 운명(運命)이었다. 운명. 그랬다. 동탁이 '아들'이라 부르던 여포에게 창을 던져 큰 상처를 입힐 뻔한 것도 운명이었다. 여포가 동탁을 찌른 것도 운명이라면 운명이었다. 그 순간 여포는 맹자의 도(道)를 떠올렸다.

"잔적(殘賊), 잔적(殘賊)이 여기 있다! 내가 잔적(殘賊)을 죽였다."

두 번 실수는 하지 않는다. 여포는 길이가 짧은 검(劍)이 아니라 긴 극(戟)을 사용했다. 동탁은 여포의 목을 움켜쥐려고 했지만 손이 닿지 않았다. 여포는 옆구리에 박힌 극(戟)을 뽑아 동탁의 복부에 꽂았다. 복부에 꽂았던 극을 빼자 동탁의 몸에서 선헐과 함께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다리에 힘이 빠졌는지 동탁이 주저앉았다. 여포는 찌르고 또 찔렀다. 죽어가는 동탁이 쉰 목소리로 말했다.
"이놈이 여자에 미쳤구나. 여자에 미쳐서 아비를 찌르다니!"
오원(五原)의 여패(呂沛)도 비슷한 말을 하며 죽어갔었다. 여포의 얼굴이 붉다 못해 보랏빛으로 변했다. 그때처럼 주위가 피범벅이 되어갔다.

"말을 돌려라!"
원술 진영으로 향하던 여포(呂布)가 말머리를 하비성(城)으로 돌리려했다. 장정 한 명이 입는 갑옷을 아비와 딸, 두 사람이 껴입었으니 소녀의 연약한 육신으로는 여간 고달픈 것이 아니었다. 달리고 있는 중에 말에서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여포의 몸에 비단 끈으로 꽉 묶어 놓았으니 숨쉬기조차 힘들다. 여포의 명마(名馬) 적토마는 그 빠르기가 남다르다보니 위아래 요동으로 인한 고통 역시 소녀의 여린 몸이 견딜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

"우웩"
여포의 딸은 급기야 구토를 하고 말았다. 혼절을 하였는지 잠시 후에는 사지(四肢)에 힘을 잃고 축 늘어져 버렸다. 딸의 몸이 식어갔다. 죽어간다. 여포는 그렇게 느꼈다. 그때의 원(媛)도 그렇게 말 위에서, 여포의 등 뒤에서 죽어가지 않았는가.

"하비성으로 돌아간다!"
그날부터 여포의 딸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몇 번이나 기절했다가 깨어나길 반복했다. 원술과의 혼담은 이제 지나간 일이 되었다.

원(媛)의 어미가 죽어가며 자신의 딸 원(媛)을 지켜달라고 부탁하듯 초선도 자신의 딸을 지켜달라고 여포에게 부탁하지 않았던가. 원(媛)의 어미도, 원(媛)도, 초선도, 초선의 딸도 자신에게 사랑을 베푼 여인, 자신이 지켜야할 여인들은 여포의 눈앞에서 죽어갔다. 여포는 자책하기 시작했다. 책사 진궁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여포는 계속 술을 마셨다. 여포가 술잔을 겨우 놓은 것은 조조군(軍)이 하비성을 점령했을 때였다. 조조가 여포를 치죄할 때에도 여포의 취기(醉氣)는 채 가시지 않았었다.

"이 귀 큰 놈이!"
만만하던 유비가 조조 곁에 붙어 뭐라고 속삭였을 때 줄에 묶여 꿇어 앉혀져 있던 여포가 유비를 향해 외쳤다. 하비성 백문루(白門樓)에 목이 매달릴 때서야 여포는 술이 깨기 시작했다. 여포의 목에 굵은 줄이 감겼다. 백문루(白門樓) 기둥에 줄 반대쪽이 단단히 묶였다. 조조의 병사들이 목이 줄에 감긴 여포를 백문루(白門樓) 아래로 떨어뜨렸다. 여포의 육중한 몸이 큰 호(皓)를 그리며 밑으로 떨어졌다.

어린 날 아비 여패(呂沛)의 굵은 손이 목을 조여왔을 때와 같은 심한 현기증을 여포는 느꼈다.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여포의 얼굴이 붉다 못해 보랏빛으로 변해갔다. 아비를 죽일 때도, 정원을 죽일 때도, 동탁을 죽일 때도 그런 모습이 아니었던가. 죽어가던 여포는 고통을 참아가며 외마디 호통을 쳤다.

“잔적(殘賊)...!”

그 호통은, 백문루(白門樓) 아래를 지나가던 조조의 군사들을 벌벌 떨게 할 정도로 위엄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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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햇빛이 내려쬐는 하비성 백문루(白門樓). 목에 줄이 묶여 늘어 뜨려진 여포가 마지막 힘을 다하여 외마디 호통을 치니 그 위엄인즉 천계(天界)의 군신(軍神)이 하계(下界)로 내려와 만군(萬軍) 위에 군림하는 듯했다.

“잔적(殘賊)!”

눈을 뜨기 어려울 정도로 따가운 햇볕 때문인지 여포의 외마디 호통의 위엄 때문인지 조조의 군사들 중에서는 고개를 쳐들고 죽어가는 여포 봉선(奉先)의 마지막 모습을 똑바로 바라보는 이가 없었다. 그 중 오직 한 명, 여포의 기병 장수였던 장료(張遼)만은 예외였다.

동탁이 죽은 뒤 주군의 복수를 하겠노라고 동탁을 모시던 이곽과 각사 같은 무리들이 성(城)으로 몰려오자 왕윤은 그 양녀 초선에게 한 자락의 비단끈을 건네주었다. 두 손으로 비단끈을 받든 초선에게 아비 왕윤이 ‘혼자 할 수 있겠느냐’고 물어봤다. 초선이 혼자 하지 못하겠노라고 말을 한다면 왕윤이 검을 들어 직접 초선을 찌르려고 하던 차에 비단끈을 받은 초선이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소녀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다만 남은 봉선(奉先)이 걱정될 뿐이지요.”
“봉선(奉先)은... 포악한 사내였다.”
“그래도 그 분은 제 낭군이었습니다.”

대월지(大月氏) 출신으로, 한(漢)의 관료 왕윤 밑에서 자랐던 초선(貂蟬)은 비단끈으로 목을 매어 자진하였다. 성(城)이 함락되기 직전 여포가 다급히 왕윤에게 다가와 초선의 행방을 묻는다. 여포의 애마(愛馬) 적토마가 힘이 남다르다보니 여인 하나쯤은 뒤에 태워도 거뜬히 천릿길을 달릴 수 있노라고, 지금 적토마를 타고 성 밖으로 나가면 훗날을 도모할 수 있다고 하는 여포에게 왕윤이 차분한 어조로 달래듯 얘기한다.

“걱정 마시게나. 초선은 내가 먼저 보냈소이다. 조만간 장군과 다시 만나게 될 걸세.”

성은 함락되었다. 불타오르는 누각(樓閣)을 보며 왕윤 역시도 초선의 뒤를 따르듯 자결했다. 이각과 곽사의 무리들은 주군을 시해한 왕윤의 시체를 토막 내어 저자 거리에 효수하였다고 한다. 미처 도망가지 못하고 숨어있던 왕윤의 아들도 끌려나와 모진 고문 끝에 효수되었다. 아마 초선이 그들 군사의 손에 잡혔더라면 왕윤의 아들에 비할 수 없는, 상상하기조차 끔찍한 일을 겪었을 것이리라.

성이 함락되기 직전 초선이 목을 매고 자진하자 초선의 시체마저 능욕될까 두려워한 왕윤은 초선의 시체에 기름을 붓고 태웠다. 한참을 그렇게 태우자 남은 것은 하얀 재가 남았다. 초선의 유품은 생전에 여포가 초선에게 선물했던 옥(玉) 반지 하나였다. 청옥(靑玉), 여포가 오랫동안 지니고 있던 옥(玉)반지였다. 여포의 누이 원(媛)의 유품(遺品)이라고 했더랬다. 눈에 들어간 재가 매워서인지 가혹한 운명이 미워서인지 왕윤은 칠십 평생 흘리지 않았던 눈물을 흘렸다.

초선(貂蟬)이 죽은 지 몇 해나 지났는데도, 여포는 초선을 잊지 못하였다. 아니 초선을 향한 마음은 더하여만 갔다. 초선을 먼저 보냈다고 했던 왕윤의 말, 조만간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는 왕윤의 말이 지금도 귓가에 들리는 듯 했다. 원소의 자객(刺客)을 피해 달아나는 가운데서도 여포는 초선을 떠올렸다. 원소의 정예 군사들을 상대로, 무사(武士)답게 한바탕 싸움으로 미련없이 생(生)을 마감해볼까도 싶었으나 초선을 다시 만나기 위해선 구차한 목숨이나마 이어가야 된다 싶어 그 자리를 피했던 것이다.

하내 장양(張楊)에게 몸을 숙이고 그 밑의 객장(客將)으로 들어간 것도, 이후 몇 번의 비루한 행각을 이어나간 것도 초선을 다시 만나기 위한 여포의 몸부림이었다. 오명(汚名)이든 악명(惡名)이든 세상에 이름을 떨쳐야 여포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초선이 알 것이 아닌가. 여포의 부하 장수 장료(張遼)가 충심으로 간언을 하였으나 여포는 듣지 아니하였다. 비록 변방이긴 하여도 여포의 고향땅인 병주(幷州) 오원군(五原郡)으로 가지 않는 것이 장료로선 이상하였다. 하다못해 서촉 땅으로 들어가기만 해도 지금 가진 여포의 기병으로 훗날을 쉬이 도모할 수 있을 것이건만 군웅(群雄)들이 저마다의 야심을 드러내고 있는 지극히 위험한 이 서주(徐州) 땅에 버티며 원소, 원술, 조조, 유비를 상대로 칼과 창을 맞대고 일진일퇴(一進一退)를 거듭하는 여포의 속마음을 이해할 수 없는 장료였다.

“주군(主君). 술은, 이제 그만 드십시오.”
“무어라?”
“잊으십시오. 초선(貂蟬)은 죽었습니다.”
“문원(文遠), 네깐 놈이 무얼 안다고 그러느냐!”

술에 취한 여포가 장료를 향해 고함을 친다. 진등의 아비 진규가 유심히 그 모습을 보고 있다. 좋은 술이 있다고 여포에게 갖다 바친 진규가 초선(貂蟬)의 소식을 들었다고 여포에게 전했으니 그로 인해 초선을 향한 여포의 그리움은 더욱 짙어진 상태였다. 태산(泰山)의 비액(泌液)으로 담은 귀한 명주(名酒)을 가지고 있거니와 그 술보다 더욱 좋은 소식이 자신에게 있다고 여포에게 다가간 진규는 장안과 서주, 서촉과 하비를 오가는 상인으로부터 비싼 돈을 주고 구입한 청옥(靑玉)반지를 꺼내 보인다.

반지를 본 여포는 기뻐한다. 원(媛)의 어미에게서 여포의 누이 원(媛)으로, 여포에게서 초선(貂蟬)으로 주인이 바뀌었던, 대월지(大月氏) 특유의 문양이 새겨져 있는 바로 그 반지였다. 그해 적토마를 타고 성 밖으로 빠져나간 뒤로는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환한 미소가 여포의 얼굴에 떠오른다. 곧 초선을 데려오겠노라고 진규가 얘기하자 여포는 진규의 두 손을 얼싸쥔다. 금과 비단을 챙겨주며 초선을 고이 데려올 것을 부탁하는 여포였다.

이제 곧 초선을 다시 만나게 되리라 여포가 잔뜩 기대하고 있는 상황인줄 모르고 ‘초선은 이미 죽었노라’고 매정히 말하는 장료가 여포로선 여간 밉지 않았다. 여포는 자신의 바로 밑 직급이었던 기병(騎兵) 책임자 장료를 두 직급이나 낮춰 버렸다. 장료가 그동안 쌓아왔던 충의(忠義)와 인덕(仁德) 때문에 차마 형틀에 묶어 매질을 할 순 없었지만, 진규의 감언(甘言)에 넘어간 여포로선 장료를 곁에 두고 부리기만큼은 적이 불편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진규의 아들 진등이, 초선(貂蟬)이라면서 대월지 피가 섞인 듯 피부색이 가무잡잡한 소녀 하나를 여포의 군문(軍門)으로 데리고 왔다. 여포가 보낸 비단으로 고운 옷을 해입은 소녀는 동탁의 시녀였던 초선(貂蟬)을 닮긴 닮았다. 험악한 인상의 장정들의 얼굴을 본 소녀는 겁에 질려 울고 만다. 소녀의 눈물을 본 여포는 동탁과 초야(初夜)를 보낸 뒤 흐느껴 울고 있던 초선(貂蟬)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날 초선을 본 여포는 금기(禁忌)의 문을 넘고 말았었다. 그것은 여포의 운명(運命)이었다.

초선(貂蟬)인가? 초선(貂蟬)의 환생(還生)인가? 여포는 군사들을 도열시켜 초선을 맞이하게 한다. 행여 초선이 잃어버린 기억을 찾을까 싶어 병사들은 그 옛날 동탁의 군사로 있을 때의 복장으로 서있게 하였다. 군사들은, 여포 자신이 찔러 죽인 동탁(董卓)의 동(董)자가 새겨진 깃발을 들고 초선을 맞이했다. 강등되어 일반 병사들과 함께 도열한 장료로서는 주군(主君)인 여포의 모습이 실망스럽기만 했다.

밤을 새며 급하게 복장과 깃발을 만든 것 자체도 힘든 일이거니와 한낮의 땡볕이 가득한 성 안에서 도열해있자니 피곤과 더위를 못 견뎌 쓰러지는 병사가 있다. 병사들이 쓰러지거나 말거나 여포는, 그 옛날 동탁의 어린 시녀 초선(貂蟬)과 자신 사이에서 생겨난 딸아이와 이번에 새로 찾은 초선을 흐뭇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여포는 청옥(靑玉)의 반지를 초선의 손에 끼워주었다. 반지는 손가락에 꼭 들어맞았다. 가늘고 긴 손가락이 그때 그 동탁의 시녀 초선(貂蟬)의 손가락과 닮았다. 아니 그때 그 초선이었다. ‘다시는 잃어버리지 마시게’라며 초선에게 다짐시키는 여포였지만 이제 다시는 잃어버리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하는 것은 오히려 여포 그 자신이었다. 새로 찾은 초선은 옛 연인(戀人)의 다짐을 아는지 모르는지 손가락에 끼여진 옥(玉)반지만 마냥 만지작거리는 것이었다.

여포는 초선이 기억을 찾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자신과 관련된 기억을 찾지 못하는 것뿐만 아니라 하는 행동 자체가 그 나이 또래에 비하면 떨어져 보였다. 좋은 술이 있다고 서촉의 비주(泌酒)를 가져온 진규에게 초선의 일을 물어보니 성에서 탈출할 때 머리를 다쳐 그렇다고 한다. 얼굴이 조금 달라져 보이는 것도 그때 얼굴을 다쳐서 그런 것이라고 하니 이각과 곽사 따위의 잡군으로부터 성(城)을 지키지 못해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을 다치게 만든 여포의 마음은 점점 더 괴로워진다. 그런 여포에게 잃어버린 연인의 기억을 되찾게 하는 오래된 비책(秘策)이 있노라고 진규가 진언한다.

연인의 기억을 되찾게 하기 위해선, 남녀가 나란히 비약(泌藥)을 장복해야 한다는 진규의 말에, 환(丸)으로 만들어진 이름 모를 약을 여포와 초선이 나란히 복용하였다. 독한 술과 함께 먹은 환(丸)은 그 자체가 색정(色情)을 돋우는 미약(媚藥)이었다. 여포는 초선을 끌어안았다. 초선을 처음 안았을 때와 같은 뜨거운 밤이 이어졌다. 다시는 동탁에게 뺐기지 않으리라. 이각과 곽사의 군대를 피해 도망치지도 않으리라. 며칠 밤, 며칠 낮, 미약에 들뜬 남녀는 열정을 불태웠다. 몸이 달아오를 때의 독특한 체취(體臭)도 초선(貂蟬)의 그때 그것과 같았다. 절정에 도달할 때 외치는 신음소리도 초선과 같은 대월지(大月氏)의 언어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환(丸)과 독한 술, 그리고 며칠인지 알 수 없는 오랜 시간들이 여포 그리고 초선과 함께 했다. 호시탐탐 조조와 유비가 노리고 있는 성(城)도, 변해버린 주군의 모습에 실망한 군졸들도 여포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여포의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초선(貂蟬), 다시 찾은 초선의 나신(裸身) 뿐이었다.

여포가 여자와 술에 빠져 미쳐버렸다는 얘기가 군졸들 사이에 퍼지기 시작했다. 요녀(妖女) 초선에 홀려 폐인이 되었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여포가 양아비 동탁을 찌른 것도 요녀(妖女) 초선과 왕윤이 파놓은 미인계에 빠져 그랬다는 말도 나왔다. 술과 미약에 취해 방천화극조차 제대로 들지 못한다는 믿지 못할 얘기마저 나왔다. 장료는 병사들의 동요를 막으려 했지만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갔다. 장료는 여포에게 간언(諫言)할 기회만을 기다렸다.

그즈음 소패성에서 관우가 왔다. 일전에 원술 휘하 맹장 기령 앞에서 보여준 여포의 빼어난 활솜씨로 인해 큰 전투를 피할 수 있었던 유비가 보낸 선물을 가지고 온 것이다. 우방(友邦)이면서 한 편으론 적장(敵將)이기도 한 유비가 가장 아끼고 믿는 관우인지라 여포도 나와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백 보(步)였던가 백 오십 보(步)였던가 먼 거리에 창을 세워놓고는 화살로 창 중심을 맞춰 원술과 유비 사이의 싸움을 말렸다는, 천하에 소문이 자자한 무공을 보여줬던 그때 그 맹장 여포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져버린, 눈 밑이 시꺼멓게 변해버린 사내가 관우를 맞이했다. 그 옛날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의 창칼을 한 몸으로 버텨내던 만부부당(萬夫不當) 인중여포(人中呂布)가 지금은 발걸음조차 휘청거리면서 관우를 맞이한다.

‘진규, 진등 부자가 말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구나.’

비겁하달까 잔인하달까 진씨 부자의 이런 계책은 무사로서의 자존심이 강한 관우에겐 썩 내키지 않는 방식이었다. 석연치 않은 표정으로 앉아 있는 관우에게 여포가 검무(劍舞)를 보여주겠노라고 한다. 여포의 무사들 중에서 검술이 대단한 자들을 고르고 골라 검무(劍舞)를 보여주는데 여포의 손짓 한 번이면 검무(劍舞)를 구경하던 객장(客將)의 목이 달아나기도 하는 무대였다. 검무가 시작되었다. 손을 떨며 연신 술잔을 비우는 여포를 관우가 말없이 지켜봤다. 그 옛날 홍문연(鴻門宴)에서 그러했듯 자신의 생사(生死)가 여포의 손짓 한 번에 달려 있는 것을 알면서도 공포는커녕 여포에 대한 측은함만을 느끼는 관우였다.

여포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눈빛은 흐려졌고 식은 땀이 계속 났다. 이제 막 손을 들어 잔을 던지면 여포의 옆자리에 있는 관우의 목이 달아날 것이다. 그때였다. 검무를 추던, 가면을 쓴 무사가 여포 앞으로 달려와 무릎을 꿇은 것은. 어느새 가면을 벗은 무사는 목숨을 걸고 여포에게 간언(諫言)했다. 문원(文遠)이었다. 분노한 여포가 잔을 들어 장료에게 집어 던지려하는데 그런 여포의 팔을 관우가 잡는다.

“원술의 기령으로부터 저희 형님을 구해주신 여(呂) 대인님.”

관우가 여포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그리고 장료를 살려줄 것을 애원한다. 그 도도하던 관우가 자존심을 버리고 무릎을 꿇었으니 여포로서는 내심 흐뭇한 일이었다. 동탁의 밑에서 한참 무명(武名)을 떨칠 때 유비, 관우, 장비 세 놈들로부터 협공을 받아 도망쳐왔던 것이 지금껏 가슴에 남아 있는 여포였다. 여포와 칼과 창을 직접 맞대었던 놈들 중에서 살아남은 놈은 그 세 놈이 다였다. 그 중에서 관우의 창이 가장 매서웠지 않았는가. 창끝이 매서운만큼 자존심도 드높았던 그 관우가 고개를 숙이고 청원을 하니 여포는 짐짓 웃으며 장료를 살려준다.

“저 사람의 무예가 저와 같으니 이대로 죽이기에는 필시 아까운 인재임이 틀림없습니다. 비록 예(禮)에 어긋나긴 하지만 그 충의(忠義)만큼은 갸륵하옵니다. 저를 보시어 부디 저 무사(武士)를 살려두시옵소서.”
“여봐라, 문원(文遠)이 연회의 흥을 깨었으니 당분간 옥에 가두어라.”

여포의 명령은 이것이 다였다. 옥에 갇힌 장료는 얼마 못 가 옥에서 풀려났으나 여포에 대한 충성(忠誠)의 맹세는 거둬진 뒤였다. 옥에 가뒀던 장료가 풀려났는지 어땠는지 여포는 모르고 있었다. 인덕을 쌓으면 행여 초선의 기억이 돌아올까 싶어 감옥 문을 열고 죄수들을 죄다 풀어주라고 명했던 것이었다.

여포의 눈에는 초선만 그리고 초선의 딸만 보였다. 약과 술, 사랑에 빠진 여포는 화살 하나로 기령과 유비를 말리던 그때 그 여포가 아니었다. 이젠 예전처럼 군사들을 도열시킨 뒤 우렁차게 지휘를 하기는커녕 제 자리에 일어서서 창을 휘두르는 것조차 버거울 정도였다.

동탁 휘하에 있을 때부터 장료를 따르던 군사들이 장료를 찾아가 여포를 제거하고 조조에게 귀순할 것을 종용하였다. 예전 같으면 ‘어찌하여 나 장료 문원(文遠)의 충의(忠義)를 시험하려 드느냐’면서 그 자리에서 펄쩍 뛰었을 장료였건만 이번에는 잠자코 듣기만 한다.

이후 하비성이 조조의 군대에 의해 함락되었을 때 기병 장수로 이름났던 장료도 여포, 진궁과 함께 묶여 있었다. 조조는 장료에게 투항할 것을 권유했다. 백문루(白門樓) 위, 그 서슬퍼런 조조의 맹장들을 똑바로 쳐다보며 장료가 말한다.

“승상, 청컨대 조건이 하나 있소이다.”
“문원(文遠), 말해보시오. 내 그대의 청이라면 들어주리다.”
“제가 살려달라고 청하는 장수는 반드시 살려주십시오. 제가 후대하라고 하는 장수는 반드시 후대해주시옵소서. 그 장수가 어떤 조건을 달더라도 그 장수를 받아주시옵소서. 설령 그 장수가 승상 곁을 떠나려 한다고 해도 말입니다. 이 조건이 이뤄지지 않으면 제가 승상 곁을 떠나겠사옵니다.”
“알았소. 문원(文遠).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외다.”

훗날 관우가 조조 군(軍)에게 포위되었을 때 장료는 관우를 살려줄 것을 조조에게 청하였다. 관우를 살려주고, 받아주고, 후대할 것을 청하였다. 조조의 허락을 받은 장료는 관우에게 다가갔다. 관우는 세 가지 조건을 내걸었고 관우가 내건 세 가지 조건을 조조는 모두 허락하였다. 그 얼마 후 관우가 그 형 유비를 찾아 조조의 진영을 떠나갔지만 조조는 붙잡지 아니하였다. 관우는 조조 곁을 떠나갔지만 문원(文遠)은 죽는 그날까지 조조에게 충성(忠誠)을 다하였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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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의 눈앞에 당대(當代) 맹장(猛將) 여포가 줄에 묶여 있다. 여포 옆에는 여포의 책사 진궁과 기병 장수 장료 역시 같은 꼴로 앉아 있었다. 유난히 꽉 묶인 오랏줄이 아픈 듯 여포가 연신 몸을 비틀었다.
“승상, 너무 꽉 묶은 것이 아니오. 인정을 베푸시어 조금 느슨하게 해주면 아니 되겠소.”
조조는 잠시 입술을 꽉 깨물더니 여포의 요구를 단호히 거부한다.
“범을 묶는데 어찌 꽉 조이지 않겠는가.”
줄에 묶인 여포를 내려다보는 조조의 손이 곽가의 밀서(密書)를 읽던 그날처럼 바르르 떨린다.
‘인정(人情)이라, 내 아비를 죽인 자가 어찌 내게 인정(人情)을 바랄 수 있단 말인가!’

환관 조등의 양자 조숭은 아들 조조를 남달리 귀히 여겼다. 황실의 사람들이나 먹을 수 있다는, 귀한 사슴(鹿) 고기를 구해 조조의 양기(陽氣)를 보(補)해주곤 하였다. 사슴의 피(鹿血)와 뿔(鹿角)은 어린 조조의 몸에 좋은 보양식이 되었다. 그 옛날 진나라의 환관 조고가 황실에서 귀히 키우고 있는 사슴을 일컬어 말(馬)이라 하여 황제를 농단했다는 지록위마(指鹿爲馬) 이야기에서 보듯 사슴은 황실에서나 키우고 황족들이나 먹을 수 있는 귀한 짐승, 즉 영물(靈物)로 여겨졌었는데 조숭은 그 귀한 사슴 고기를 마치 말(馬)고기에 불과한 것처럼 아들 조조에게 매 끼니마다 먹였다. 귀한 고기를 먹은 조조의 양물(陽物)은 또래의 그것보다 훨씬 크고 실해졌다. 조조의 정실 정씨와 그 뒤를 잇는 유씨 부인은 조조의 양물(陽物)을 받아들이기에는 옥문(玉門)이 좁았다. 기생 출신인 변씨(卞氏) 부인이 그나마 조조의 남다른 양물(陽物)을 밤새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였다.

‘환관의 아들이라 세간의 눈총을 받던 이 조숭의 아들놈이 그토록 대단한 양물을 가지고 있을 줄이야.’

아들 녀석인 조조의 호색(好色) 난봉질을 볼 때마다 그 아비 조숭은 꽉 막혀있던 가슴이 묘하게 뚫리는 듯 했다. 조조가 어디선가 색시 도둑질을 하고 올 때면 호통을 치기보다는 흐뭇하게 바라보던 조숭이었다. 환관의 자식으로 한 평생 성욕(性慾)을 억누르고 자랐던 조숭은 아들 조조의 행동에서 기이한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었다.

조조가, 그리고 조조의 친구들이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나면 조숭의 하인이 조용히 신부와 신랑 집에 다녀갔다. 먹고 살기 힘들어 나무껍질을 벗겨먹고 그것마저 없으면 아비가 자식을 잡아먹기도 하는 이 난세(亂世)에 부잣집 도련님의 하룻밤 장난질의 대가(代價)로 보기에는 믿기지 않을 만큼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넉넉히 후사(厚謝)를 하니, 울던 색시도 눈물을 그치고 성난 신랑도 분을 푸는 것이 난세의 일이었다.

환관인 할아비 조등도 조조의 못 말리는 색욕에 두 손을 들었다.
“허허 그놈 참 큰일을 낼 놈이로구나.”
조조의 난봉을 보다 못한 조조의 숙부 조길(曺吉)이 조숭에게 조조의 잘못을 고쳐줘야 한다고 얘기했다. 사냥과 매 날리기, 계집질에 미쳐있는 아만(阿瞞) 녀석이 하고 다니는 난봉 짓거리가 공맹(孔孟)의 도(道)를 숭상하는 유학자 조길(曺吉)의 눈에 찰 리가 없는 것이다. 허나 조조가 마비증상(風)이 왔다고 거짓말을 하여 숙부를 속인 일이 있은 후로는 그 엄격한 조길(曺吉)도 조조의 행악(行惡)에 대해서만큼은 손을 들고 말았더랬다.

인물평으로 유명한 허소가 조조를 가리켜 ‘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이라 평한 일이 있었다. 혹자는 ‘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이 아니라 '치세의 간웅, 난세의 능신'이 아니냐?’며 허소의 말뜻을 따져 묻기도 하였으나 정작 당사자인 조조는, "간음할 간(奸)인가 간사할 간(姦) 간인가?" 그것을 따져 물으며 껄껄 웃었다고 한다.

능신이든 간웅이든 허소가 예견했던 난세(亂世)가 시작되었다. 황건적의 난이 끝나자 천하는 군벌들의 각축장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조용히 살기 위해 진류로 향하던 조숭이 죽었다. 조숭 일행은, 늙은 조숭에서 어린 하녀까지 하나도 남김없이 다 살해당했다. 조숭 일행을 호위해주겠다던 도겸의 군사들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값비싼 보석부터 쌀 한 톨까지 재물이란 재물은 모조리 약탈당했다. 현장에 남은 것은, 몸에 걸쳤던 옷가지까지 빼앗긴 채 발가벗겨 나뒹구는 시체들뿐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조숭의 시체는 하초의 양물이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다는 것이 조조의 심복 곽가가 발빠른 세작을 통해 남몰래 알아온 사실이다.
‘그곳엔 조그만 살점 하나조차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곽가가 보낸 밀서(密書)를 쥐고 있는 조조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필시 조조의 아비 조숭이 환관(宦官)의 자식임을 욕보이려한 것이리라. 조조는 시체 훼손으로 악명 높은 장수들을 하나씩 손꼽아본다.

화웅(華雄), 동탁의 부장(副將) 화웅이란 자가 동탁의 전횡에 맞선 반동탁 연합군 장수의 사체(死體)를 심하게 훼손한 뒤 성벽에 내걸어 끔찍한 본보기로 삼았던 일이 있었다. 하지만 그 화웅은 이미 오래 전에 죽었지 않은가. 동탁의 오른팔이었으며 화웅의 상관이었던 여포? 그 여포가 한 짓일까? 화웅도 여포도 동탁이 아끼던 장수였다. 서량(西涼)의 동탁은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인물로 자신에게 불복(不服)하는 관리를 죽여 그 시체를 조정(朝廷) 대신(大臣)들에게 본보기로 보여주던 인물이 아니었던가. 시체를 훼손하여 적(敵)을 겁박하는 것은 서량(西涼)의 풍습이었고 그 풍습은 서량군을 주축으로 한 동탁이 이끌던 군대에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조조의 아비 조숭을 제외한 나머지 시체들은 신체의 급소 한 두 군데를 제외하곤 깨끗한 상태였다. 조숭 일행이 따로 고용한 용병 무사들마저도 별다른 저항을 못하고 일격(一擊)에 제압을 당했을 정도이니 필시 대단한 실력을 갖춘 무사(武士)였음이 틀림없다.

누가 한 짓이든 간에 사체(死體)에 대한 이토록 심한 모독, 가문(家門)에 대한 이토록 심한 능욕이 어찌 천지(天地)에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자존심이 강한 조조, 아비에 대한 사랑이 깊은 조조로서는 참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놈들의 씨를 말려라!” 격분한 조조는 도겸 정벌에 나섰다. 평소의 모습과 다른, 살육(殺戮)의 피를 탐하는 인면귀(人面鬼)라도 된 듯한 모습이었다. 온 천하가 자신을 비난할지라도 훗날의 역사가가 어떠한 말로 자신을 욕할지라도 아비 조숭의 하초(下焦)가 끔찍하게 훼손당한 것을 알게 된 조조로서는 그 분노(忿怒)를 참을 수 없었다. 군민(軍民)을 합쳐 서주의 수십만이 죽었다. 개와 닭 같은 가축도 가차 없이 도살하였다. 말 그대로 씨(氏)를 말렸던 것이다.

조조의 분노를 샀던 태수 도겸은 그 얼마 후 병으로 죽었다. 도겸은 죽기 직전 자신의 서주 태수 자리를 유비에게 물려주었다.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조조가 그 아비의 살해자로 의심하기도 했던 여포가 지금 조조의 눈앞에 밧줄에 묶여 꿇어 앉아있다.

“유공(劉公), 이 자를 어찌했으면 좋겠소?”
조조는 옆에 앉은 유비를 힐끗 쳐다봤다. 유비(劉備)는 한쪽 손을 들어 두 손가락으로 길고 탐스러운 귓불을 만지작거리며 대답한다.
“대인(大人)께서는, 여포(呂布)가 그 아비 정원과 동탁을 죽인 일을 잊고 계십니까?”

유난히 긴 귓불을 위아래로 만지작거리는 것은 두려울 때 유비의 습관이었다. 귓불이 긴 사람은 명(命)이 길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지금 이렇게 죽지는 않을 것이리라. 유비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되뇌었다. ‘내 명(命)은 길다. 이렇게 짧게 살다 죽지는 않을 것이리라.’

조조의 질문에 태연스럽게 대답하긴 했지만 유비는 내심 두려움에 떨었다. 아우 장비(張飛)를 도겸의 부하장수 장개(張闓)로 위장하게 하여 진류 땅으로 향하는 조숭 일행을 살해하도록 명한 것은 유비였다. 지금처럼 남의 밑에서 싸우며 계속 천하를 떠돌 수만은 없었다.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이 필요했다.

황건의 난이 끝난 직후 안희현에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 독우를 두들겨 패고 나올 때 지난날 유비 형제의 큰 뜻을 생각하여 말과 식량을 대줬던 소쌍과 장세평이 고개를 돌리고 떠나갔다. 지금 자신을 후원해주고 있던 미축도 언제까지 자신을 뒷받침해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소쌍과 장세평이 떠나가듯 미축과 미방 형제 역시 미련 없이 자신을 떠날지도 모른다.

도겸의 신세를 지며 객장(客將) 역할을 했던 유비로서는 도겸 군대의 군기(軍箕)니 복장(服裝)을 준비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일찌감치 조숭의 행로를 눈치채고 있던 유비의 동생 장비는 휘하의 발빠른 군사를 재촉하여 길을 가로질렀다. 채찍과 몽둥이를 앞세워 과격하게 군사를 재촉하는 것은 장비만의 특기였다. 장비의 군사는 도겸이 보낸 호위군사로 위장해서 부호 조숭을 맞이했다. 도겸의 부장인 장개(張闓)란 장수가 장비와 같은 성씨(姓氏)에 장비와 비슷한 외모의 텁석부리란 것이 주효하여, 조숭 일행은 장(張)이란 글자가 크게 새겨진 깃발을 앞세우고 다가오는 텁석부리 장수가 마중 나오기로 한 도겸의 장수 장개(張闓)인줄로만 알았다. 장개로 위장한 장비, 도겸군으로 분장한 장비의 군사는 조숭 일가를 무참히 살해했다.

“이 귀 큰 놈이!”
묶여 있던 여포 녀석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대뜸 호통을 친다.
혹시? 하는 생각에 곁눈질로 유비의 반응을 살피던 조조가 고개를 돌려 여포를 바라봤다.
“여포는 아비를 죽인 자입니다.”
“아비, 아비를 죽인 자라...”
“아비를 죽인 자를 어찌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줄에 묶인 여포가 짐승이 울부짖듯 크게 외친다.
“승상에겐 청주(淸州)의 정예 보병(步兵)이 있고 나에게는 서량(西涼)의 정예 기병(騎兵)이 있소이다. 나와 함께 하면 천하(天下)를 도모할 수 있소! 부디 나 여포를 죽이지 마시오!”
유비가 조조에게 또 한 번 속삭였다. 부친을 죽인 여포의 말을 믿지 말라고.

그날 여포는 백문루(白門樓)에서 목이 졸려 외마디 절규를 남기고 죽었다. 이날 조조 곁에 앉아 ‘아비를 죽인’ 여포를 죽이라고 조조를 재촉했던 유비는 그 몇 년 후 조조를 살해하려는 동승의 음모에 가담하였다고 전해진다. 백문루(白門樓) 굵은 동앗줄에 목이 매여지기 직전, 여포는 조조에게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승상, 승상. 저 귀 큰 놈이 가장 믿지 못할 놈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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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안(建安) 3년, 여포가 있는 하비성을 조조의 군사가 포위하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유비 휘하에 있던 수염쟁이 관우란 장수가 조조를 만나려 하였다. 긴 수염, 대추처럼 붉은 얼굴, 예전 여포와 창과 칼을 맞대었을 때부터 조조가 흠모하였던 그 장수(將帥)가 조조를 찾는 것이다. 이쪽에서 만나보려고 애를 쓰고 싶은 차에 이렇게 스스로 만나러 오다니 조조로선 불감청(不敢請)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이라는 말이 어울릴만한 상황이다.

무기 하나 없이 조조의 막사에 들어온 관우는 여포의 부하 '진의록‘이란 자의 처를 구해달라고 조조에게 간절히 부탁하였다. 여자 하나 구하기 위해 관우가 무릎을 꿇고 부탁을 할 정도라면 어떤 미색(美色)일지 괜시리 궁금해지는 조조였다. 궁금한 것은 좀처럼 참지 못하는 조조였다. 특히 여자에 관한 것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여포의 하비성을 점령하자 조조는 진의록의 처 두씨(杜氏)를 찾았다. 그리곤 여느 때처럼 두씨를 자신의 막사로 불러들였다. 조조가 두씨(杜氏)를 자신의 막사에 불려들었음을 알게 된 관우는, 조조에게 크게 실망하고 말았다. 두씨(杜氏)는 관우에게 특별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옛날 '장생(長生)'으로 불리던 시절, 복수를 위해 살인을 하고 도망자 신세로 있을 때 관우를 숨겨주고 학동들을 가르쳐주는 자리까지 마련해주었던 이가 두생(杜生)이라는 탁군의 유생이었다. 두생은 몸이 좋지 않아 종종 각혈을 하곤 했다. 그러면서도 두생은 관우와 마주 앉아 세상의 이치를 얘기했었다.

“세상은 비록 어지러우나 학문(學文)이 없으면 도(道)를 이루지 못하고 도(道)를 이루지 못하면 전란(戰亂)은 전란(戰亂)으로만 이어질 것이외다. 이 난세(亂世)의 끝이 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다가올 평화(平和)의 시대를 위해서라도 학동(學童)들을 위한 가르침은 계속되어야 하지 않겠소.”

연신 각혈을 하면서도 천하의 이치에 대해 열심히 말을 하는 것은 두생이었고 관우는 두생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었다. 어느 날부터 몸이 아픈 두생을 대신하여 관우가 학동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두생은 관우에게 운장(雲長)이라는 자를 붙여주었다. 장생(長生), 길고긴 장생(長生)의 삶은 지금과 같은 전란(戰亂)의 시대에선 이루기 어려웠다. 설령 길고 길게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절개도 의리도 버린 치욕스런 일생이 되기 일쑤라는 것이 두생의 설명이었다. 이승의 삶(生)이란 길다고 좋은 것이 아니었다. 길어도 오욕(汚辱)으로 가득한 삶이 있는가 하면 짧더라도 영광(榮光)으로 가득한 사람이 있다고 했다.

저 하늘의 구름은 어떠한가. 오늘 내일 다른 듯하면서도 구름은 계속 이어진다. 백성들은 햇볕이 쨍쨍 내리쬐면 해를 가려줄 구름을 기다린다. 가뭄이 깊어 비가 필요할 때도, 벼가 싹을 내리려고 할 때도 구름을 기다린다. 하늘의 구름처럼 그 명성이 길게 이어지길, 가뭄 속 구름처럼 백성들로부터 귀함을 받게 되길 바라며 두생은 관우에게 ‘운장(雲長)’이라는 새로운 자(字)를 붙여주었다.

유비와 관우, 장비가 형제의 의를 맺을 때 두생은 각혈을 하면서도 그 의식의 제문을 써주었다. 제문의 형식, 제문의 내용 어느 것 하나 두생이 신경써주지 않은 것이 없었다.
“천지신명이시여. 비록 우리 세 사람이 성(姓)은 다르오나 의(義)를 맺어 형제가 되었으니 몸과 마음을 다해 곤한 백성을 도와 위로는 나라에 보답하고 아래로는 백성을 편안케 하소서. 형제가 비록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태어나지 못했지만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죽기를 원하나이다.”

두생이 써준 축문이 이어졌다. 유비의 어머니 등씨(藤氏)는 제문을 준비해준 두생의 손을 꼭 잡았다. 두생의 손은 차가웠다. 그 손은 뼈만 남은 듯 말라있었고 손등에는 저승꽃이 피어있었다. 형제의 약속을 맹세하는 그 도원의 결의가 이뤄지는 동안 용케 각혈을 참고 있던 두생은 오랜만의 외출이 힘겨웠는지 그날 밤부터 심히 앓기 시작하였다.

탁군의 저잣거리를 휘어잡고 있던 유비, 관우, 장비 세 사람을 눈여겨보고 있던 소쌍과 장세평 상단(商團)의 무리는 삼형제의 출병을 위한 지원을 해주었다. 사람을 모으고 무기를 장만할 돈이 형제에게 쥐어졌다. 자기 몫의 돈을 챙겨온 관우는 도원(桃園)의 결의(結義) 직후부터 앓아누운 두생(杜生)에게 소쌍과 장세평으로부터 받은 돈 일부분을 내놓았다. 하지몬 관우가 병구완을 위해 주는 돈을 두생이 단호히 거절하는 것이었다.

“이 돈을, 병든 나에게 쓰지 말고 제대로 된 무기를 만드는데 쓰게나. 그 무기로 이 난세(亂世)에도 도(道)와 의(義)가 있음을 보여줄 수 있다면 나로서는 여한(餘恨)이 없다네.”

두생(杜生)은 딸아이를 시켜 종이 한 장을 꺼내오게 하였다.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인 소녀가 떨리는 손을 내밀었다. 그 손에는 그림이 그려진 종이가 쥐어져 있었다. 관우가 종이를 받아들자 얼굴이 하얀, 곱상한 얼굴의 소녀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리는 것이었다. 관우가 받아든 종이 위에는, 칼도 아니고 창도 아닌 길다란 무기 하나가 그려져 있다. 큰 도끼처럼 두꺼운 칼날이 긴 봉(奉)과 한 몸이 되어 있었다.

관우는 대장장이를 시켜 일찍이 그 누구도 보지 못했던 새로운 무기를 만들도록 하였다. 두생이 그려준 그대로, 무쇠로 만든 긴 창의 끝에 마치 도끼날과 같이 묵직한 칼날을 잇게 하였다.
보통의 장정이라면 나무로 된 장대 끝에 쇠끝을 박아 창으로 사용하거나 행여 돈푼이나 있고 힘 꽤나 쓰는 무사라고 해도 무쇠로 만든 창 몸통 끝에는 작은 쇠날을 이어붙이는 것이 대부분인 시대였다. 길고 긴 풀무질과 담금질이 끝이 나고, 대장장이 서너 명이 달라붙어 그 창을 들어 올린 뒤 말에 올라탄 관우에게 건넸다. 관우는, 거대한 도검과도 같은 그 창을 가볍게 받아들었다.

처음 보는 창을 받아 쥔 관우는 한두 번 그 자리에서 휘둘러보더니 두 다리로 말의 몸통을 꽉 움켜쥐고는 말고삐를 세게 잡아당겼다. 말이 달린다. 말 위에 올라탄 관우는 새로 만든 창을 맘껏 휘둘러 보았다. 길이도 무게도 관우의 마음에 드는 것이다.
기병의 무기가 이렇게 강하고 무겁고 날카로우면 보병으로선 접근조차 어려웠다. 기병 대 기병의 접전이라고 하면 무기가 길고 튼튼한 쪽이 우위를 잡기 마련이었다. 두생이 고안해준 무기는, 어지간한 창이나 칼로는 대적(對敵)도 못할 필승(必勝)의 무기가 되리라. 멀리서 쏜 화살이 날라와 관우를 용케 맞추기라도 하지 않는 이상, 승리의 영광은 늘 운장의 것이리라.
말 위에 올라탄 관우가 그 무기를 휘두르자 시퍼런 칼날이 초승달과 같은 곡선의 빛줄기를 이뤘다. 그 모습은 마치 언월(偃月)의 청룡(靑龍)과 같은 것이었다.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가 각기 말과 무기를 갖춰 탁군을 떠나려할 때 두생은 밖에 나와 배웅하지 못할 정도로 몸이 약해져 있었다. 말 위에 올라타 먼 길을 떠나려는 관우에게 두생의 어린 딸아이가 다가와 아비의 선물이라면서 낡은 책을 내민다. 춘추좌전이었다.
유생(儒生)인 두생(杜生)의 손때가 묻은 춘추좌전(春秋左傳)을 건네받은 관우가 그 몇 년 후 탁군 두생의 소식을 물어보았더니 두생은 관우가 탁군을 떠난지 얼마지 않아 피를 서 말이나 토한 뒤 죽고 난세에 혼자 남은 그 딸아이는 황건적 출신 어느 장수 하나가 데려갔다는 것이다. 그 장수의 이름이 진의록이었다.

관우는 그때 그 두생의 은혜를 잊지 않고 갚으려는 것이었다. 두생은 죽었지만 두생의 딸을 돌보아 주겠노라고 스스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던 관우였다. 청룡도(靑龍刀)와 춘추좌전(春秋左傳), 훗날 관우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두 물건은 두생에게 받은 것이었고 청룡도를 휘두르고 춘추좌전을 읽을수록 두생을 향한 감사의 마음은 깊어갔다. 그 마음이 깊어갈수록 두생의 딸, 그때 그 얼굴이 하얗던 소녀에 대한 생각이 짙어지는 것이었다.

조조는 관우의 부탁을 못 들었는지 행여 듣고도 모른 척 하는 것인지 그날 밤 진의록의 처를 자기의 처소로 데리고 오게 하였다. 이때의 일이 있어서인지 훗날 관우가 조조의 밑에 있게 되었을 때도 관우는 조조에게 마음을 주지 않았다. 조조가 아무리 후히 대접하여도 관우의 마음은 닫혀 있었다.

한나라의 관직은 크게 제(帝) 왕(王) 공(公) 후(候)로 나눌 수 있었다. 후(候)에는 현후(懸侯) 향후(鄕候) 정후(亭侯)가 있었다.
관우가 받은 한수정후(漢壽亭侯)라는 관직은 한수 땅을 봉지로 받았기에 한수정후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으로 기실 큰 실리는 없는 땅이었다. 관우의 인망을 생각하여 효렴(孝廉)부터 시작하기에는 관우의 나이가 적지 않았다. 관우의 기마술을 살려 기도위(騎都尉) 등의 요직을 맡기기에는 조조에 대한 관우의 충성심이 불확실했다.

조조는 관우를 불렀다. 공(公)의 직위를 내려줄까 하였으나 관우는 아직 공(功)이 없다하여 스스로 거절하는 것이었다. 어차피 버리고 갈 관직인데 높으면 어떠하며 낮으면 어떠한가. 관우는, 한수정후(漢壽亭侯)라는 관직의 앞머리에 한(漢)이라는 글자가 앞머리에 붙은 것에 위안을 삼았다. 훗날 누군가가 조조에게 받은 관직을 비난할 테면 ‘나는 조조의 관직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한(漢)의 관직을 받았노라’ 이러고 웃어 넘기면 되지 않겠는가. 조조의 후사에 행여 충심이 흔들릴 때면 두생이 선사한 춘추좌전(春秋左傳)을 읽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두생(杜生)은 대장군 두무(竇武)의 후손이라 하였다. 대장군 두무(竇武)와 태부 진번(陳蕃)은, 황제의 눈을 가리고 세상을 어지럽히는 환관의 무리를 없애려 하였으나 오히려 어리석은 황제인 영제(靈帝)와 간악한 환관들으로부터 화(禍)를 입었다. 새로이 옥좌에 오른 어린 황제 유굉(劉宏)에게 일말의 기대를 걸고 일을 도모하였건만 유굉은 환관의 말만을 믿는 것이었다.

두무와 진번은 물론이요 그 일가친척들까지 형틀에 올라 고초를 겪었다. 환관의 무리들은 엉치뼈가 부서지고 두개골이 빠개지는 소리를 짐짓 즐기는 듯하였다. 길고 긴 고문이 이어졌다. 처참하게 찢겨진 시신들이 낙양(洛陽)을 핏빛으로 물들였다.

환관 특유의 잔인함을 알고 있는 두무는 일의 성사가 어렵게 되자 자살을 선택하였다. 이제 막 효렴(孝廉) 벼슬을 얻어 입신양명(立身揚名)의 꿈을 키웠던 두무의 어린 조카 두실(竇實)은 죽지 않기 위해 도망을 쳤다. 수도인 낙양에서 서주로, 서주에서 연주로, 연주에서 병주 태원으로, 태원에서 유주 탁군으로 두실(竇實)의 도망이 이어졌다. 도망 다니는 곳마다 성(姓)을 바꾸고 이름을 바꿨다. 낙양에서 멀고 먼 탁군(涿郡)에 도착했을 때 두실(竇實)은 두생(杜生)이 되어 있었다.

저잣거리에서 돗자리나 짜고 짚신이나 만드는 주제에, 중산정왕 유승의 후손이라고 너스레를 떨고 다니는 유비를 황실의 일족인 유원기와 만나게 한 것도 두생(杜生)이었다. 현덕(玄德)이라는 그럴싸한 자(字)를 붙여준 것도 두생(杜生)이었다. 유원기의 도움으로 유비가 노식의 밑에서 글을 배우러 가기 전 기초적인 학문이나마 익히게 한 것도, 천하대의(天下大義)를 바라보는 큰 마음을 갖게 만든 것도 두생(杜生)이었으며, 관우보다 나이가 어린 유비가 큰 형의 자리를 맡도록 한 것도 두생(杜生)이었다.

효성스러운 이와 청렴스러운 이를 높이 일컫는 말이, 벼슬의 하나로 바뀐 효렴(孝廉)이란 관직은 입신양명(立身揚名)을 꿈꾸는 한(漢)의 젊은이들에겐 명예롭고도 화려한 관직의 출발점이 되곤 했다. 비단옷을 입고 낙양거리를 누비며 관직의 첫걸음을 축하받던, 그때 그 야심만만했던 효렴(孝廉) 두실(竇實)이 시골 탁군의 서생(書生)으로 변해 있었다. 효(孝)를 생각한다면 그때 그 낙양 땅에서 아비와 함께 죽었어야 했었다. 아들의 행방을 끝내 말하지 않았던 아비는 형(刑)이 가중되어 그 누구보다 더 모진 고문을 받던 끝에 수레에 묶여 갈기갈기 찢겨 죽었다고 하였다.

효렴(孝廉)이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저 혼자 살기 위해 일가족을 버리고 달아난 두실은 그동안 모아두었던 돈을 가지고 홀로 북방으로 향했다. 가족들을 데리고 나올 시간이 없었다. 그가 홀로 도망치는 사이에 낙양에 남아있던 두씨(竇氏) 일가족은 모두 형장으로 끌러갔다. 처절한 비명 속에 그들은 불귀의 객이 되었다. 살아남은 이는, 성도 바꾸고 이름도 바꾼 두실(竇實) 혼자뿐이었다. 탁군에서 학동을 가르치던 두실(竇實), 아니 두생(杜生)은, 언제부터인지 어린 딸을 데리고 있었다.

침실에 들어선 두씨를 보고 조조는 두 번 놀랬다. 한 번은 그녀의 미모 때문이었고 나머지 한 번은 그녀의 남다른 기품 때문이었다. 조조의 침실에 들어온 여인들은, 지레 옷고름을 풀며 색기를 흘리거나 죽음을 각오하고 당당히 자신의 뜻을 밝히는 두 종류로 분류될 수 있었다. 전자의 경우로는 장제의 처이자 장수의 형수인 추씨를 들 수 있겠으나 두씨는 그녀와 달랐다. 두씨는 후자에 속했다.

두씨는, 자신은 한(漢) 황실의 외척이었던 대장군 두무(竇武)의 후손이요 당고(黨錮)의 화(禍)를 피해 몸을 숨기고 살았었노라고, 고단했던 지난날을 얘기하였다. 고단한 세상살이였지만 기품만큼은 잃지 않은 상태였다. 조조는 그런 두씨를 아껴 귀히 대접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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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성에 들어가게 되면 두씨 여인을 꼭 찾아 달라 부탁했던 그 수염쟁이 장수의 머리통이 지금 조조의 눈앞에 놓여 있다. 나무상자의 뚜껑을 여니 소금에 절여진 머리통 하나가 나왔다. 운장, 또는 미염공이라 불리던 관우의 머리통이었다.

그 길고 탐스럽던 수염도 절반 이상 사라진 상태였다. 배꼽 아래까지 흘러내리던 그 긴 수염이 기이할 정도로 짧게 잘려있다. 나무 상자에 넣기 편하게 터무니 없을 정도로 길던 운장의 수염을 잘라버린 것인지 목이 베일 때 수염도 같이 잘린 것인지 생전에 불렸던 미염공이란 별호가 무색할 정도이다. 한(恨)이 남아서일까 원(怨)이 많아서일까, 한껏 부릅뜬 눈만이 예전의 서슬 퍼렇게 호통을 치며 전장을 지휘했던 그 미염공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생전의 붉은 색과 달리 딱딱히 굳어 검게 변해버린 얼굴빛이다. 반들거리던 윤기는 사라지고 짧게 깎여 짐승의 털처럼 뻣뻣해진 수염 곳곳에 핏빛 검은 얼룩이 엉겨 붙어있다.

“먼 길 오느라 수고하셨소이다.”
살아서 다시 보고 싶었건만, 그리하여 살려서 데려오라 했건만 ‘강동의 쥐새끼’란 놈은 이렇게 무참히도 목을 베어 보냈구나.
굵은 줄에 묶인 채 함거에 실려 허창에 압송되었다면, 관우는 예전 그때처럼 조조에게 조건을 내걸 것이다. 그럼 못이기는 척하고 그 조건을 들어주며 조조 자신의 인덕(仁德)을 과시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 과시의 끝이 어떻게 맺어질지는 조조 자신도 모를 일이었지만 이렇게 무참한 만남은 원치 않았던 것이었다.

‘관공, 일어서시오. 먼 길 오느라 수고하셨소이다.’
지난날 그러하였듯이 조조는 관우에게 손수 비단옷을 하사할 것이다.
‘보시오, 나, 조조는 이렇게 관대한 사람이외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오. 진궁이 퍼뜨린 이상한 소문 같은 것은 믿지 말아야 될 것이오.’
하루에 천리를 달릴 수 있다는 명마(名馬)를 내어주면 운장은 기분 좋은 웃음을 지을 것이다. ‘이 말이면 유비 형님에게 빨리 갈 수 있겠구려.’ 말을 본 관우가 그때처럼 너털웃음을 터뜨릴 것이다. ‘운장, 자네나 나나 이제 늙어가는 처지 아닌가. 빨리 갈 필요가 있겠소. 서로간의 은원(恩怨)은 접어두고 우리 술이나 한 잔 하도록 합시다. 이리 앉으시오.’

조조는 관우를 불러놓고 넌지시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유선이란 아이는 어떻소? 믿을만한 아이요? 공명은 알고 있소? 눈치 챘냐 말이오.’
관우의 머리통을 붙들고 조조는 혼잣말을 해본다. 큰 칼, 무거운 창을 휘두르며 전장을 달리던 때처럼 눈을 부릅뜨고는 있지만 관우의 대답은 들리지 않는다.
'내가 황제 자리에 오르려 한다고 그토록 원망을 하더니, 보시오. 내가 황제인지 아닌지. 우리 아들놈? 그때는 자네나 나나 죽은 뒤의 일 아니겠소. 아, 자네는 벌써 죽어 있네그려.'

조조가 혼자 술을 들며 혼자 말을 했다, 운장의 잘린 머리통을 보고 있으니 맹덕 자신의 수명도 오래 남지 않았음을 새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죽음이란 이토록 가까이 있는 것을!’ 지난날 화타란 의원 놈이 머리통을 짜개어 보자고 할 때부터 맹덕은 자신의 건강이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눈치 채고 있었다. 화타 녀석은 양기(陽氣)가 머리로 몰려 부종이 생긴 탓에 두통이 생긴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머리의 피를 뽑아야 된다고 했더랬다. 화타는 당장이라도 조조가 쓰러져 죽을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지만 그 화타보다 몇 십 년을 더 산 조조였다. ‘보게나, 운장. 내가 자네보다 더 오래 살았구려.’

“손권, 이 강동의 쥐새끼 같은 놈, 네 놈은 천년만년 살 것 같으냐!”
갑작스레 조조가 버럭 고함을 지른다. 그 매서운 눈빛, 그 서슬 퍼런 호통은 생전의 관우를 그대로 빼닮은 것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흥분하여 벽력같이 외치던 조조가 바닥에 쓰러지고 만다. 어린 시절부터 장복해온 녹용(鹿茸)이며 녹혈(鹿血) 같은 보양 음식으로 인해 몸에 쌓이고 싸인 양기(陽氣)가 걷잡을 수 없이 솟구쳐 오를 때는 두통이 심하게 올라오는 것일까. 젊을 때는 두통에 시달려도 어느 정도 참을 수 있었으나 나이가 들어서는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술을 마시면 몸에 열이 올라서인지 두통은 더 심해졌다. 그럼에도 조조는 술을 들이켰다.
‘아아, 가슴의 시심(詩心)도 그렇고 머리의 양기(陽氣)도 그렇고 지난날 마음을 줬던 무사(武士)에 대한 그리움도 그렇고, 밤새 정을 나눴던 여인과의 뜨거운 만남도... 그 모든 것이 과유불급(過猶不及)이로구나.’

뒤늦게 다가온 시녀들이 쓰러진 조조를 침상에 눕힌다. “문희(文姬)의 시를 읊어 보거라.” 글을 아는 시녀 중에 음성(音聲)이 청아한 이가 채옹의 딸 채염(蔡琰), 문희(文姬)의 시를 노래한다. 조조는 그 노래에 대한 답가를 읊는다. 시(詩)와 부(賦), 부(賦)와 시(詩)가 마치 남녀의 교접처럼 어우러졌다. 지금은 비록 남의 여인이지만 다음 생에 태어나거든 꼭 채염 같은 여인을 만나 사랑을 나누리라.

조조의 침실에는 여인에 대한 사랑을 다룬 시부(詩賦)가 가득했다. 그 중 일부는 아들 조비의 여인에 관한 것이기도 했고 젊은 날 만났던 진씨와 두(竇)씨, 추씨, 그리고 강동의 미녀 대교와 소교에 관한 것이기도 했다. 때론 절의를 지켜 자신의 곁을 떠나간 무인에 대한 그리움을 여인에 대한 절절한 사랑으로 비유한 것도 있었다. 운장이 떠나간 뒤 한동안 조조가 불렀던 노래들이었다. 손이 떨려 이제 직접 붓을 들긴 어려워진 조조가 시녀를 불러 대신 글을 쓰게 한다. 조조 생의 마지막 사랑 노래는 관우(關羽)와 채염(蔡琰)을 향한 것이었다.

그 얼마 후 조조가 죽었다. 조조가 죽자 조비가 조조의 뒤를 이었다. 조조의 침실을 정리하던 조비는 자신의 아내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 조조의 시를 발견하게 되었다. 동생인 조식이 자신의 아내에게 반한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아비마저 그 여인을 잊지 못하였단 사실에 분노한 조비는 아비의 침실에 있던 연심 가득한 시부(詩賦)를 모두 불태워버렸다. 조비에게 아버지 조조 맹덕은 영원한 무제(武帝)이어야만 했다. 여인의 숨소리에 떨리는 사람이어선 아니 되었다. 그것이 아들의 아내라면 더더욱 아니 되는 일이었다. 그날 이후 조비는 아내를 멀리하고 첩들을 가까이 하였다. 문소황후(文昭皇后) 견씨(甄氏)에게 자결의 명(命)이 내려지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관우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오의 여몽도 목숨이 다하였다. 오랜 지병이 있던 두 사람이건만 세간에선 관우의 원혼 때문에 죽었다고들 하였다. 조조도 죽고 여몽도 죽었으나 관우의 목을 베라 명하였던 손권은 죽지 아니하였다. 죽기는커녕 황제(皇帝)를 칭하기까지 하였다. 옥새(玉璽)를 만지작거리며 손권이 혼잣말을 했다. “이 얼마나 오랜 만인가!”

손권의 아버지 손견(孫堅)이 비밀스럽게 옥새를 간직하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아들에게만은 그 옥새를 자랑스럽게 보여주는 아버지였다. 큰아들 손책은 그 옥새를 빌미로 원술에게 군사를 빌려 대업(大業)을 도모하자는 쪽이었으나 손권의 생각은 달랐다. 옥새(玉璽)는 손씨 가문의 것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손권이 11살이 되었을 때 그 아비 손견이 죽었다. 손견이 죽은 뒤 손책은 강동으로 터전을 옮겼다. 강동에 있던 호족들, 오두미교 신자들과 손씨 가문 사이에는 전쟁 아닌 전쟁이 이어졌다.

손씨 형제는 각기 역할을 나누었다. 무용(武勇)이 뛰어난 형 손책은 강경한 역할을, 동생 손권은 온건한 역할을 맡았다. 강경파 손책이 이끄는, 맹호(猛虎) 같은 군사(軍士)들과 직접 칼과 창을 맞대기가 겁이 난 동오의 호족들은 온건파 손권에게 형을 설득시켜 달라고 부탁하였다. 손책이 오두미교 장로들을 잡아 가두면 신자들은 손권에게 몰려와 곡식과 비단을 바쳤다. 강온 양면책 속에 강동은 빠르게 손씨 형제의 것이 되어갔다. 하지만 늘 그렇게 수완 좋게 진행되긴 어려웠다. 도사 우길을 잡아 가둔 것은 손책의 실책이었다. 적당히 고개를 숙여주면서 곡식과 비단으로 손씨 형제의 체면을 세워주면 될 것을 우길은 끝까지 고개를 쳐들었다. 그러곤 오히려 손책을 향해 호통을 치는 것이었다. 성난 손책은 우길에게 혹형(酷刑)을 가하였다.

황건적의 난이 실패로 돌아갔다고는 하나, 여전히 세상은 태평교와 오두미교의 세상이었다. 오(吳)와 초(礎) 지역에는 예로부터 비분강개한 이들이 많았다. 강동 땅은, 이성(理性)보다 감성(感性)이 지배하는 지역이었던 것이다. 복수를 하려는 자들이, 온건함 속에 끝 모를 야심을 감추고 있던 손권과 손을 잡았다. 먼 훗날 조조의 군사와 손을 잡고 관우의 목을 베듯 그때의 손권은 오두미교 신자들을 상대로 잡아서는 안 될 손을 잡은 것이었다. 형 손책이 대교와 혼인을 하면서 그 동생인 절세미녀 소교를 동생 손권이 아닌 친구 주유에게 시집보냈을 때부터 손책과 손권의 불협화음은 예고된 것이었으리라. 형인 손책이 대교를 차지한다면 동생인 자신이 소교를 차지함이 마땅하지 아니한가 하는 것이 손권의 생각이었다. '주유, 그놈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손책은 사냥을 좋아하였다. 그냥 사냥이 아닌 범 사냥이었다. 예로부터 군주의 사냥은 일개 한량의 취미거리로만 치부할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일종의 군사 작전이었다. 사냥터에는 믿을 수 있는 자들만 모이게 되어 있었고 외부인의 사냥터 출입은 철저히 금지되어 있었다. 범 사냥은 그 중에서도 가장 크고 가장 삼엄한 것이었다.

오두미교 신자가 손권에게 옥새(玉璽)를 갖다 바쳤다. 원술이 죽은 후로 사라졌던 바로 그 옥새였다. 옥새를 만지막거리던 손권은 자객을 사냥터로 들여보냈다. 손권에게 정보를 얻어 사냥터의 지리를 알고 있는 자객들은 약속된 장소에서 손책을 기다렸다. 여기서부터 혼자 사냥에 나선다고 했던 바로 그 지점에 숨어서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자객의 칼이 손책의 복부에 꽂혔다. 매 번 다니던 사냥터에, 신뢰할 수 있는 병사들 틈이라 방심하고 있던 손책이 칼에 찔려 쓰러졌다.

“우길 천사(天師)님의 복수다!”
몇 번이고 칼을 찌른 뒤 쓰러져서 부들부들 떨고 있던 손책의 몸이 꿈틀거리지 않을 정도가 되자 그제서야 자객이 칼질을 멈췄다. “이제 천사(天師)님을 만나러 갈 수 있겠구나.” 자객들은 목에 칼을 대고는 푹 엎드렸다. 칼질이 서툴러서인지 용기가 부족해서인지 제대로 죽지 않은 자객 하나가 땅바닥을 기며 꿈틀거린다. 뭐라고 말을 하려 하지만 목이 찔려 쉿쉿 하는 바람 소리가 난다.

그때 손권이 병사들을 이끌고 왔다. 오늘따라 유난히 포위망을 넓이겠다 하여 군사들을 손책과 떨어뜨린 손권은 채 죽지 않은 자객을 보자마자 자객의 입가로 귀를 갖다 대었다.
“너는 누구냐! 누구의 명이냐?” 목에서 새는 바람소리에 섞여 제대로 들리지 않았지만 자객의 입모양으로 볼 때 ‘감사하오.’라는 말이었다. 일어선 손권은 들고 있는 칼로 자객의 목을 마저 잘라버렸다. 데굴데굴 구르는 머리통을 든 손권은 외쳤다.

“허공의 잔당이 주군을 살해했노라!”
손씨 가문의 전횡에 반대하며 조정의 실세 조조와 손을 잡으려 했던 허공은 옥에 갇혀 있었다. 옥에 있던 허공은 저잣거리에서 사지가 찢어져 죽었다. 허공의 일족은 모진 고문을 못 이겨 거짓 자백을 하고 말았다. 이런이런 자들과 함께 음모를 꾸몄소이다. 그렇게 자백이 이뤄지자 참혹했던 고문은 끝이 났다. 남은 것은 제2, 제3의 공범을 찾는 것이었다. 그날부터 강동의 호족들이 손씨 일가의 처형장에 하나둘 불려나갔다. 그들 중 일부는 도부수(刀斧手)의 칼날에 목숨을 잃었고 일부는 손권에게 무릎을 꿇고 충성을 맹세했다. 손권은 강동을 빠르게 자기의 땅을 만들어갔다. 무용(武勇)만 앞세웠던, 야수(野獸) 같은 형 손책이었다면 어찌 이렇게 할 수 있었겠는가.

자객의 단검에 수없이 찔렸던 손책은 그날로부터 며칠을 더 살았지만 죽는 순간까지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우길의 이름을 외치는 것뿐이었다. ‘우길 천사(天師)님의 복수외다!’ 자신을 찌르며 우길의 이름을 외치던 자객의 얼굴이 떠올랐다. 손책이 우길의 원혼에 시달리다 죽었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자객을 시켜 형을 살해하고 그 형의 자리를 꿰차는 것은 관우 같은 무인(武人)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한(漢) 황실의 옥새(玉璽)를 가로채 황제(皇帝)의 꿈을 꾸는 것 또한 한(漢)의 신하됨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 관우로선 용서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관우가 의형 유비의 곁이 아닌, 오(吳)에 가까운 형주 땅에 버티고 있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그 나름대로 오(吳)에 정보망이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과거 손권이 저질렀던 비밀스런 행동을 첩자들로부터 들어 알고 있는 관우는, 손권 측으로부터 결혼 제안을 단언지하에 거절했다. 일개 장수인 관우로부터 모욕을 받은 오(吳)의 군주 손권(孫權)은, 그 옛날 자객과 손을 잡았듯이 이번에는 위(魏)의 조조와 손을 잡았다.

피투성이가 된 관우가 손권 앞에 끌려나왔다.
“이 강동의 쥐새끼가!”
관우는, 목숨을 구걸하기는커녕 연신 호통을 쳤다. 조조는 생포하여 보내달라고 했건만, 관우의 입에서 죽은 우길의 이름이 나오자 손권은 관우의 입에 재갈을 물리도록 명하였다. 관우가 무엇인가를 외치려 하지만 입에 물려진 재갈 때문에 웅엉웅얼거리는 소리로만 들렸다. 부릅뜬 두 눈으로 볼 때 그것은 손권을 향한 욕설임에 틀림이 없었다.

“관우의 목을 베어라!” 손권이 외쳤다.
촉(蜀)과의 관계가 극단적으로 나빠질 것을 우려한 여몽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생각해보라며 관우의 목을 베려는 손권을 제지해보려 하지만 손권은 단호하였다. 골수에까지 병이 든 상태인 여몽으로서는 더 이상 따질 기운이 없었다. 관우의 목은 소금에 절여진 채 나무상자에 담겨 허창의 조조에게 보내졌다. 얼마 되지 않아 여몽이 병으로 죽게 되자 일의 자초지종을 모르는 사람들은 죽은 관우가 살아 생전의 원수였던 여몽에게 복수를 하였다고 말하곤 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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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의 머리를 늘어뜨린 노인이 구중심처 깊은 곳에 누운 조조의 머리맡으로 조용히 다가왔다. 침상에 누운 조조는 으레 그러하듯 곁에 있는 검을 뽑아 침입자를 대뜸 베려고 했지만 쇠갑옷도 능히 자를 수 있는 그 날카로운 검(劍)은 허공을 몇 번 휘젓고 말 뿐이었다. 노인은 살아있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는 귀신이었다. 조조가 죽인 화타의 원혼이었다. 화타는 조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양 손을 무심히 뻗어 조조의 어깨를 짚었다. 조조가 끙끙거리며 몸부림쳤다.

"조공(曺公), 검을 내려놓으시게나."

조조가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된 검을 내려놓았다. 화타는 조용히 손을 들어 조조의 맥을 짚었다. 그 손은 조조의 손목에서 조조의 이마로 향했다.

"조공(曺公), 두통은 점점 심해질 것이네. 그리고 그대 앞에 약사발을 들고 오는 이를 조심하시게. 그 누구도 믿지 마시게나!"

그 말을 남기고 화타의 유령은 조용히 사라졌다. 잠을 설쳐 두통이 더욱 심해진 조조는, 화타가 사라진 벽 한 쪽을 핏발 선 눈으로 쳐다보았다. ‘약사발이라... 의원 놈이 날 죽이려 한다 말인가!’ 조조는 한쪽 입술을 깨물었다.

그 밤이 지나자 조조는 태의 길평을 불렀다. 승상의 두통이 심하니 두통을 달랠 약을 가져오라 하였는데 태의란 모름지기 황실을 위한, 황제의 명(命)에 의해 움직이는 의원이 아니었던가. 조조의 명은, 황제의 권위를 능멸하는 처사였다. 그러나 그런 능멸을 감히 치죄하려고 드는 이는 없었다. 황제를 위한 약재도 조조의 병구완을 위해 사용되어졌다. 황제의 사냥터는 조씨 가문의 것이 되었고 황제의 금빛 화살은, 검은 옻칠이 된 조조의 화살통에 꽂아졌다. 황실 사냥터에서 조조가 쏜 황제의 화살이, 황제만이 쏠 수 있는 진귀한 사냥감에 박혔다. 그러자 조조의 측근들은 마치 황제가 사냥감을 맞춘 듯 큰 환호성을 질렀다. 어린 황제는 감정을 채 숨기지 못해 부들부들 떨었고 그런 황제를 지켜보던 황실의 신하들은 분노가 겉으로 드러날까 불안해했다. 사냥 도중 황제가 다칠 경우를 대비해 사냥터에 동행했던 태의 길평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그것을 국구 동승이 지켜보고 있었다.

시녀가 가져온 약사발을 바라보던 조조가 길평을 불렀다. 그런곤 약사발 속 탕약을 길평 본인이 마셔볼 것을 명했다. 약사발을 받고 이마를 잠시 찡그리던 길평은 탕약을 마시기는커녕 약사발을 들고 조조에게 뛰어 들었다. 조조의 곁에서 시립(侍立)하고 있던 무사가 그런 길평을 가로막았다. 길평이 내던진 약사발이 무사의 얼굴에 맞아 깨어졌다. 두 눈에 탕약(湯藥)이 들어간 무사는 고통을 못 이겨 신음하기 시작했다. 독(毒)이었다. 그것도 맹독이었다.

조조는 길평을 문초했다. 태의 길평과 국구 동승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형장으로 끌려갔다. 두통 때문에 인내심이 줄어든 조조는 문초를 지휘함에 있어 살을 지지고 뼈를 부수는 극형으로 일관했다. 이 사건 이후부터 조조는 자신에게 가져올 약재를 담당하고 탕약을 대령하는 이들을 자신의 측근 중에서 골랐다. 가장 믿을 수 있는 이, 바로 자신의 아들들 중에서 조조로부터 가장 큰 믿음을 받는 이에게 약사발을 가져오는 임무를 맡긴 것이다. 조식을 물리치고 조조의 신임을 독차지하게 된 조비가 직접 그 임무를 맡았다.

장수의 군대에 쫒길 때의 일이었다. 조조의 말이 화살에 맞아 쓰러졌다. 말 위에 탄 채 장수의 군사들을 피해 도망치던 조앙이 말과 함께 쓰러진 조조에게 다가왔다. 말의 궁둥이에 박힌 화살로 볼 때 조앙과 조조 둘 다 태우고 달아나기는 역부족이었다. 아비를 버리고 혼자 살아남을 것인가 아비와 함께 도망쳐볼 것인가 조앙이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어디선가 날아온 창이 조앙의 가슴팍을 꿰뚫었다. 조앙이 말 위에서 떨어지자 조조가 쓰러진 조앙에게 다가갔다. 그때였다. 말을 타고 다가온 조비가 그 아비 조조를 일으킨 것은. 조비는 조앙이 타던 말고삐를 잡고는 조조 앞으로 말을 대령했다. 조앙과 어미가 다른 아들 조비가 아비인 조조에게 말했다.

“지금 이 난세에 자수(子脩, 조앙의 자)는 없어도 되지만 아버지는 꼭 있어야 합니다. 어서 말에 오르소서! 자수(子脩)가 살아 있었다면 아버지에게 이 말을 바쳤을 것입니다.”

조조는 조앙이 탔던 말에 올랐다. 방금 전까지 조앙이 앉아있었던 탓에 말 안장에 온기가 느껴졌다. 조조가 말을 타고 그곳을 떠나갈 때였다. 뒤에 남은 조비는 조앙의 몸에 꽂혀진 긴 창을 뽑아들었다. 행여 목숨이 붙어있을까 싶어서였는지 뽑은 창을 다시 한 번, 그리고 또 다시 한 번 찔러 넣었다.

그렇게 살아남은 조조가 허창으로 돌아왔다. 살아 돌아온 조조는, 죽은 아들 조앙과 호위무사 전위의 넋을 기렸다. 조조는 왠지 전위의 죽음 앞에 더 애타게 통곡했다. 그날 전장(戰場)에서의 핏빛 진실은 조비와 조조만이 알고 있는 것이었다. 따지고 보면 조앙의 갑작스런 죽음을 슬퍼하기보다 내심 타고 달아날 말이 생겨난 것이 더 반가웠던 조조였었다. 아니 어쩌면 조조의 마음 속에는 그 아들 조앙의 말을 뺏어타고서라도 그 지옥 같은 전장을 벗어나고자 했던 생각이 있었던 터였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조조의 머리 속이 고민으로 가득 찼을 때 어디선가 날아온 창이 조조의 고민을 해결해줬던 것이었다. 조앙의 친어미는 아니었지만 오랜 시간 조앙을 친아들처럼 애지중지 키워온 정씨 부인은 조조의 이러한 속마음을 눈치챘다. 정씨 부인은 조조를 버리고 낙향을 하였다. 조조가 아무리 말려도 소용이 없었다.

그즈음 조조는 악몽에 시달렸다. 화타와 조앙, 길평과 동승의 유령이 그의 꿈에 나타났다. 때론 서주에서 학살당한 이름 모를 백성들의 혼령이 나타나기도 했다. 핏빛으로 불게 물든 눈으로 잠에서 깬 조조는 두통을 가라앉힐 약을 대령하라 시녀에게 명하곤 했었다. 그럴 때면 어김 없이 친아들 조비가 약사발을 들고 왔다. 길평의 일이 있고난 뒤로부터는 조씨 가문 외에는 믿지 못하는 조조였었다. 하후돈, 하후연이 있는 하후씨 가문 사람마저도 믿지 못하는 조조였다. 하후씨는, 전한(前漢)의 개국공신인 하후영의 후손이 아니었던가. 한나라의 충신 하후영(夏侯嬰)의 뜻을 이어받아 한 황실의 역적인 조조를 제거하려 들지도 모를 일이라기 조조는 생각했다. 믿을 수 있는 것은 조씨 가문뿐이었다. 조씨 가문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믿을만한, 자신의 뒤를 이어 조씨 가문을 번창케 할 조비가 약사발을 들고 조조의 침실로 드나들었다.

약사발을 손에 쥔 조조의 손이 그날따라 심하게 떨렸다. 관우의 머리통을 봤을 때처럼 조조의 몸이 경련을 일으켰다. 조조의 눈빛이 갑자기 흐려졌다. 크헉, 기침을 토하는 소리와 함께 조조의 입에서 핏덩어리가 올라왔다. 조조는 검을 들고 조비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팔다리의 힘이 빠질 대로 빠진 상태였었다. 검을 쥐려고 했던 손은 힘없이 버둥거리기만 했다. 조비는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나서 그 아비 조조의 마지막을 지켜보았다. 조조는 부들부들 떨며 마지막 기운을 담아 화타의 이름을 외쳤다.

“화타...”

조조의 마지막 말은 채 입 밖으로 다 나오지 못했다. 이 모든 것은 조조와 조비, 둘만 있는 처소에서 벌어진, 둘만 아는 일이었다. 조비는 죽어가는 아비의 몸을 들어 침상으로 옮겼다. 그 몸은 의외로 가벼웠다. 반듯이 누운 조조의 몸 위에 황제나 덮을 수 있는 귀한 비단으로 된 이불을 덮어주었다. 조조의 침상 머리맡에 선 조비는 그 아비 조조의 죽어가는 모습을 한참이나 지켜보았다. 화타의 유령이 침상의 머리맡에서 조조를 지켜보듯 조비가 조조를 지켜보았다. 의식이 꺼져가는 조조의 눈엔 그동안 자신이 죽였던 인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비성 백문루에서 목 매달려 죽은 여포가 보였을 때 조조의 마지막 경련이 멈췄다. 그러자 화타의 유령이 그러하였듯이 조비는 손을 들어 아비의 손목과 이마를 짚었다. 숨이 완전히 멎었는지 맥을 확인해보는 것이었다.

조조가 생전 그토록 원했었던, 하지만 차마 가로채지 못했던 하북의 미녀, 원희의 아내를 덥썩 맞이한 조비가 아니었던가. 황제(皇帝)의 자리 역시 그러하였다. 아비인 조조가 생전 그토록 가까이 다가갔던 그러나 차마 가로채지 못하고 있던 황제의 자리는 조조의 아들 조비에게 넘어갔다. 조비는 한의 헌제에게 황위를 선양받아 황제가 되었다. 조조가 죽은 뒤로 화타의 유령은 허창에 더 이상 나타나지 아니하였다고 한다.




HGUC 바우 2종과 HGUC 쟈크 I 2종 토이



바우가 지온계 모빌슈트이긴 합니다만 연방계열 범용 손 부품을 이용해봤습니다.



아카데미 우주검객 샤이안(!) 킷에서 나온 고대유물(?)을 바우의 손에 쥐어졌습니다. 한국군에서 사용하는 K-1 기관단총 마냥 개머리판 길이 조절이 가능하다는 제 나름의 설정이랄까요. 붉은 색 조준기(?)를 접착시켜서 포인트를 줬습니다.
방아쇠울을 일부 잘라내고 총의 손잡이 부분을 커터칼을 이용해 다듬어서 바우의 기존 손에 끼워질 수 있도록 만들어봤습니다.





기존 바우 킷에 포함되어 있는 빔라이플은 긴 개머리판 때문에 손 움직임이 불편했었답니다.






저 파란 머쉰건은 아카데미 1/144 아이자크 킷에 있던 것입니다.
원래는 하이잭 무기인데, 이런저런 어른들(?)의 사정으로 인해 아카데미 아이쟈크 킷을 통해 만져볼 수 있었습니다. 파란색 사출색이 쟈크 I 사출색과 잘 어울린다 싶어 냉큼 손에 접착까지 해버렸답니다.
1년전쟁 끝나고 고철이 되어있던 것을 게릴라 부대가 뒤늦게 발견해서 약간 손을 본 뒤 사용했더라 이러면 그럭저럭 설명이 되려나요.




오리진 쟈크가 속속 출시되면서 이 킷들도 이젠 구판 킷이 되고 말았네요. 참여정부 시절에 만들었던 킷들을 꺼내 이리저리 만져보면서 상념에 젖게 되는 밤입니다.





요건 보너스 사진

그리고 신은 바바렐라를 창조했다. 영화







야만인을 뜻하는 영어단어 바바리안의 앞글자 바바와 신데렐라의 렐라가 합쳐진듯한 제목의 이 영화가 국내 개봉한 것은 무려 지금으로부터 수 십 년 전인 1968년의 일로, 한자(漢字) 가득한 영화 속 포스터 아랫 부분에 새겨진 싸우며 건설하자란 문구는 영화 내용과 상관없는 당시 박정희 정권의 캐치프레이즈였던 셈이다. 아마 이 영화 내용에 걸맞게 문구를 수정하면 싸우며 사랑하자 내지 싸우며 연애하자 정도가 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영화 포스터 속 한자를 포함해서 글자 그대로 읽어보면,

침묵을 뚫고 추석 최상 프로로 등장한 문제의 우주 이색작!

기원 사만년의 우주를 누비는 인간...

우주의 괴물기계 그것은...?

욕망에 불타는 검은여왕의 광태(狂態)!

공포와 괴기에 충만한 지하도시 혹성... 거기엔...

끝없는 사랑과 쾌락의 공전(空殿)이...

아ㅡ그 도취(陶醉)... 아 그 황홀경이여!

흥미의 최상편 추석날 개봉!!

파나비전 총천연색

감독 로제 바딤

뭐 이런 내용의 문구들이 되겠다. (아마 이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우주의 괴물기게 그것은...? 부분에서 혼자 배를 잡고 웃고 있을지도 모를 일.) 영화 포스터만 보면 스타워즈에서 남자 주인공들을 빼놓고 레아 공주만 남아 악당들을 무찌르는 이야기처럼만 보이지만 사실 이 영화는 그런 일반적인 시선에서 한참 벗어난다. 글자 그대로라면 우주의 괴물기계란 표현에서 스타워즈 속 데스스타 정도를 연상하게 된다만 이 영화 속에서는 아주 다른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 영화는 조지 루카스 감독의 영화도 아니고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도 아니고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도 아니니 문제의 괴물기계는 강력한 전함도 튼튼한 로봇도 아니며 에일리언이 튀어나오는 우주선도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의 감독은 여배우들을 스타로 만들어주고 그 여배우와 사랑을 나누기로 유명한 영화감독 로제 바딤인 것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흥겨운 음악과 함께 무중력 공간의 우주선 안에서 우주복 차림의 여인이 하나씩 복장을 해체하는, 유명한 장면이 나온다. 뒹구르르 몸을 흔들며 우주용 헬멧과 장갑, 상의와 하의를 하나씩 벗어나가는 여인이 바로 바바렐라,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남자라면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할 이 에로틱한 장면을 연기한 여배우는 바로 제인 폰다, 미국 할리우드의 명문 배우가문인 혼다 가문의 일원으로 베트남전 반대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하노이의 제인이란 별명이 붙기도 했던 인물이다. 반전 시위와 여성 인권 운동에 열심이었던,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개념 연예인이자 좌파 여배우로 불릴만한 제인 폰다가 오프닝에서부터 여성의 육체가 남성 관객의 눈요기거리로 등장하는 영화에 출연하니 기자들이 그녀에게 물어봤단다. 바바렐라를 찍을 땐 당신의 머리를 대체 어디에 두고 있었습니까?라고. 그러자 제인 폰다가 이렇게 대답했단다.

아마 겨드랑이 어디 쯤.

사실 그 말이 정답이다. 이 영화의 매력은 바로 그 겨드랑이 어디 쯤 같은 것이다. 여배우를 벗겨 구석구석 완전히 다 보여주지도 않고 선정적인 베드씬이 나오지도 않지만, 쉽게 내보일 수 있는 부위인 동시에 속살도 있고 주름도 있고 습기도 있고 체취(體臭)도 있고 체모(體毛)의 흔적도 있는 겨드랑이처럼 영화 바바렐라는 남성들의 응큼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브리짓 바르도와 까트린 드뇌브 등 당대 미녀배우의 연인이기도 했던 로제 바딤 감독은 할리우드에서 건너 온 미녀배우 제인 폰다의 매력적인 육체를 붓으로 삼아 멀고 먼 우주라는 광대한 캔버스 위에 에로티시즘으로 가득한 오딧세이아를 그려낸다. 에로티시즘 무비로 한때 큰 인기를 모았던 쥬스트 쟈킨 감독이 에로틱한 만화를 원작으로 해서 만든 영화 그웬돌린처럼 이 영화 바바렐라 역시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나비를 찾다가 사라진 아버지를 찾아나선 딸 그웬돌린의 이야기가 영화의 기본적인 스토리였던 영화 그웬돌린처럼 바바렐라 역시 듀란듀란이란이름의 박사를 찾아 먼 길을 떠난다. 아니 시대 순서상으로 따진다면 그웬돌린보다 바바렐라가 훨씬 더 먼저 만들어진 영화로 쥬스트 자킨 감독은 내심 로제 바딤 감독 같은 위치에 올라가길 꿈꾸며 그웬돌린을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각설하고, 우주의 여전사 바바렐라는 과학자 듀란듀란을 찾아 우주를 여행한다. 듀란듀란이란 이름의 영국밴드가 바로 이 영화 속 과학자의 이름을 딴 것이라나 뭐라나. 영화가 진행될수록 허술하고 밋밋해졌던 그웬돌린과 달리 바바렐라는 오프닝의 에로틱한 분위기를 영화 내내 이어나간다. 육체적인 접촉 없이 사랑이 나눠지는 세상에, 바바렐라는 직접적으로 살을 만지고 살을 맞대는 사랑을 경험한다. 그 백미가 되는 것은 그렇게 찾던 듀란듀란 박사를 만나는 장면에서 이뤄진다. 물리치료용 침대 같은 분위기의 기계 속에 바바렐라의 몸이 들어간다. 박사는 득의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오르간을 연주한다. 영화 포스터에 있던 우주의 괴물기계(!)가 바로 이것으로, 박사가 오르간을 신나게 연주하면 그 힘으로 기계가 반응, 기계 속 여자를 성고문(?)하지만 바바렐라는 처음에만 조금 당황했을뿐 금방 그 기계가 전해주는 압력과 진동에 적응한다. 그리고는 좀 더 진행할 것을 주문한다.

듀란듀란 박사의 흉계는, 그 음란하고 괴이한 기계가 바바렐라의 육체를 못 이긴 끝에 과열되어 연기가 올라오는 것으로 종료되고 듀란듀란 박사는 더욱 더 자신을 괴롭혀(?)줄 것을 종용하는 바바렐라에게 상스러운 여자라는 의미의 고함을 지른다. 이 영화에서 가장 볼만한 장면은 오프닝의 우주복 탈의 장면과 바로 이 오르간 고문 장면이겠지만 그 외에도 볼거리가 많다. 파코라반 측에서 참여한 의상 디자인들은 당대를 넘어 후대의 패션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나 뭐라나. 섹스리스 시대에 육체적 사랑의 가치를 깨닫고 이 행성에서 저 행성으로 옮겨가던 바바렐라는 갖가지 인물을 만나게 된다. 날개 달린 천사는 바바렐라를 도와주는 캐릭터이며 바바렐라를 통해 자신의 힘을 되찾는다. 날개가 있음에도 나는 법을 잃어버린 맹인천사는 바바렐라의 응원(?)으로 날개를 펼치고 훨훨 날아간다.

소돔과 고모라를 상징하는 소고의 행성, 그 타락한 죄의 행성에서 바바렐라와 그의 일행은 에로티시즘이라는 새로운 생명력을 가지고 투쟁을 펼친다. 진부해질만한 무렵에 영화는 초현실적인 빛의 세계를 보여주며 시각적 쾌감을 만족시켜준다. 로제 바딤 감독은 이후 나온 스타워즈와 그웬돌린, 그리고 레드소냐나 쉬라 같은 영화와는 다른, 초현실적인 영상미를 선보이며 이 영화가 여배우의 육체를 단순 눈요기로 삼기 위해 만든 영화가 아님을, 그리고 로제 바딤이란 감독이 여자만 밝히는 색골(色骨) 감독이 아님을 증명한다. 마우스 클릭 몇 번이면 에로틱한 사진과 영상을 쉽게 볼 수 있게 된 시대이며 발전된 컴퓨터 그래픽 기술로 인해 우주를 배경으로 한 영상이 더욱 실감나게 만들어지는 시대가 되었지만 로제 바딤 감독과 제인 폰다, 파코 라반 등이 빚어낸 영상은 시대를 초월하는 에로티시즘의 미학을 보여준다. 직접적인 노출 없이도 에로티시즘의 세계를 충분히 구현해낼 수 있음을, 그리고 에로티시즘 너머의 해학과 감성을 보여줄 수 있음을 증명해준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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