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8년 이에야스가 다케다 신겐과 가와지리 약정을 맺다.
1572년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 다케다 신겐의 군대에게 이에야스가 혼쭐이 나다.
노부나가와 동맹(기요스동맹)을 맺을 경우 동맹의 한 조각이 되지만 다케다 신겐과 맹약을 맺을 경우 자칫 흡수되어버릴 가능성이 있다. 이마가와 가문의 휘하 부대였으면서도 노부나가와 밀약을 맺고 이마가와 가문에게 등을 돌렸던 이에야스였기에 노부나가는 이에야스가 다케다 신겐과 연합하여 자신을 배신할 것 역시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이에야스는 노부나가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다케다 신겐에게 길을 그냥 내줄 수가 없었다. 이에야스는 과감하게 다케다의 군대와 자웅을 겨뤘고 그 결과는 참혹했다. (기존의 사실에 약간의 상상 추가)
1575년 나가시노에서 시타라가하라 전투가 벌어진다.
다케다 가쓰요리의 군대가 노부나가의 용병술에 말려 대패하고 만다.
1579년 이에야스의 정실 쓰기아먀도노(세나)와 그녀의 아들 마쓰다이라 노부야스가 사망
혈족인 이마가와 요시모토를 살해하고 이마가와 가문을 무너뜨린 오다 노부나가다에 대한 역심을 품은 쓰기야마도노는 노부나가와 동맹 관계인 이에야스가 역겨운 존재로 보인다.
며느리인 도쿠히메는 오다 노부나가의 장녀로 도쿠히메가 보낸 편지로 인해 모자의 역심이 노부나가에게 전해진다. 다케다 가문과 결탁하여 노부나가와 이에야스를 파멸시키려던 쓰기야마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결국 모자에게 남은 것은 할복 자살 뿐이었다. 자신의 목을 검으로 내리치려는 이에야스의 가신을 향해 쓰기야마가 외친다. "무엄하도다!" (무엄하도다 부분은 소설적인 상상)
이 해에 훗날 2대 쇼군이 되는, 이에야스의 3남 히데타다가 하마마쓰 성에서 출생한다. 그 어미는 쓰기야마가 아닌 다른 여자였었다. 이에야스는 도도하고 나이 많은 쓰기야마에게 호되게 당했던 탓인지 유난히도 신분이 낮고 어린 여자에게 욕정을 느꼈다. 신분이 높고 나이 많은 여자는 이에야스의 취향이 아니었다. 훗날 히데요시가 강제로 혼인시킨 히데요시의 여동생 아사히히메 같은 경우는 이에야스의 취향과는 그야말로 상극인 경우였더랬다.
1581년 다카덴진 성 함락. 다케다 가문이 무너지면서 노부나가를 견제할만한 세력이 없어졌다.
1582년 혼노지의 변 발생. 노부나가는 심복인 아케치 미쓰히데의 쿠데타로 인해 사망한다.
철권을 휘두르던 냉혹한 독재자가 외부의 적이 아닌 측근의 손에 의해 살해된 일본판 10 26 사건
1584년 고마키 나카쿠테 전투
아케치 미쓰히데의 쿠데타를 진압한 히데요시와 노부나가의 맹우였던 이에야스가 노부나가의 후계자 문제를 놓고 싸우게 된다. 전투에는 이에야스가 이겼지만 정치에서 히데요시가 이기면서 결국 히데요시가 1인자 자리에 오르게 된다. 당시로서는 무력이 건재햇고 미천한 히데요시와는 출신성분에서조차도 차이났던 이에야스로서는 크게 반발할 수도 있었지만 히데요시의 1인자 등극을 수용하고 만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2007년 이명박과 박근혜 사이에서 벌어졌던 치열한 경선과정에서의 문제점, 표의 등가성 문제와 지금에서야 문제가 되는 돈봉투 문제 등 패자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미련이 남을듯한 결과임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선에서 승자의 승리를 받아들였다는 점에서는 양자의 공통점이 있다고 하겠다.
1585년 이에야스의 심복이던 이시가와 가즈마사가 히데요시 편으로 돌아선다.
친박의 좌장인줄 알았던 한나라당 김무성 의원이 친박계의 수장인 박근혜를 버리고 이명박 친이계로 들어가 박근혜를 비판하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보면 될 터.
1586년 히데요시는 이에야스에게 자신의 여동생 아사히히메를 시집보내고 이에야스는 상경하여 히데요시와 회담을 한다.
삼국지 속에 등장하는 손권이 자신의 여동생을 유비에게 시집보내는 장면이 오버랩되긴 하지만 히데요시의 여동생 아사히히메는 이미 시집을 갔던 유부녀였고 그걸 억지로 이혼시켜서 이에야스에게 떠안긴 것으로 이에야스 측근들이 격렬한 반감을 보였다고 한다. 이에야스 역시도 자신의 여성 취향과는 전혀 다른 억지 결혼에 마지못해 응했고 이에야스 측의 반응이 시원치 않자 히데요시는 자신의 늙은 모친까지 이에야스에게 보내서 이에야스를 초대, 정국의 안정을 도모하려한다. 억지 결혼의 장깃말이었던 아사히히메는 그 몇년 후 병으로 죽고 말았다고.
이 해에 히데요시는 자손(子孫)의 번영을 기원하며 호코지(方廣寺)를 건립하는데 이후 이 절은 지진과 화재로 붕괴되어 히데요시가 죽은 뒤 아들 히데요리 때에 이르러서야 재건된다. 대불전의 범종에 새겨진 '군신풍락 국가안강(國家安康 君臣豊樂)'이라는 글귀 때문에 이에야스의 분노를 샀던 것이 바로 이 호코지(方廣寺) 재건에 얽힌 이야기.
1590년 히데요시가 자신에게 반발하던 호조 가문의 오다와라성을 공략한다.
오다와라성 함락 직전에 히데요시와 이에야스는 함께 소변을 보며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여기에 살을 덧붙여서 별똥별이 떨어지는 밤하늘을 보며 소변을 보며 각자의 소원을 비는 두 남자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시원스레 방뇨를 마친 이에야스가 히데요시에게 묻는다. "오다와라 성을 빨리 점령하도록 비셨습니까?"
이에야스와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로 쫄쫄쫄쫄 가느다란 소변줄기를 내보내던 히데요시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딴소리를 한다. "저 성이 함락되면 간핫슈(간토)를 자네에게 드리겠네."
오다와라 성이 함락되자 히데요시는 이에야스에게 지금까지 잘 다스려온 기존의 영지를 버리고 간핫슈(간토)로 옮겨갈 것을 명령한다. 가신들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에야스는 흔쾌히 그 명을 받아들여 간토로 떠난다. 쉽게 얘기하면 지금까지 잘 다스려온 송악(개성)을 버리고 민심이 안정되지 않은 한양으로 옮겨가라는 얘기인데 이때 한양으로 옮겨가서 길도 새로 깔고 성도 새로 세우고 궁궐도 새로 짓고 알짜배기 노른자 땅으로 만들어 조선왕조 500년의 도읍지로 삼았더라...는 식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소변줄기의 약함으로 히데요시가 불임임을 암시하는 부분, 별똥별을 보며 소원을 비는 부분은 만들어낸 이야기이나 오다와라성 함락을 앞두고 히데요시와 이에야스의 동반 방뇨 자체는 있었던 이야기)
1591년 아이가 없던 히데요시는 조카 히데쓰구를 양자로 삼아 간파쿠 자리에 올려준다.
히데쓰구가 히데요시의 후계자로 나섰을 때 히데요시의 측실 차차(요도도노)가 아이를 낳는다. 아이 이름은 쓰루마쓰라고 하였으며 차차는 요도성(城)을 하사받으며 요도노가타, 또는 요도도노로 불리게 된다. 조선시대로 비유하면 혜경궁 마마, 혜경궁 마님 같은 칭호인셈. 하지만 갓난아기 쓰루마쓰는 이내 사망하고 만다. 아이가 없던 히데요시가 늙그막에 두었던 측실의 품에서 2세를 보게되자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히데요시의 총애를 받았던 다도의 명인 센노리큐는 히데요시에게 히데요시 본인이 불임의 몸임을 얘기했다가 2세 탄생으로 기뻐하던 히데요시의 미움을 산 끝에 1591년 이 해에 할복자살을 하게 된다. 다도의 명인 센노리큐는 다인(茶人)의 명예를 걸고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죽어간다. (부분적으로 허구)
1592년 분로쿠의 역(임진왜란) 발발.
간토로 영지를 옮긴 이에야스는 새 영지 관리를 핑계삼아 조선으로 건너가지 않는다.
이에야스와 차차의 동침. 히데요시가 이에야스에게 건낸 복 요리 접대가 이어진다. (허구)
1593년 히데요시의 둘째 아들 히로이마루(히데요리)가 태어난다. 히데요시는 갓 태어난 둘째아들을 냉대하였으나 곧 마음을 가다듬고 애지중지여겼다고 한다.
1595년 히데요시의 조카이자 양자로 히데요시의 간파쿠 자리를 물려받았던 히데쓰구가, 히데요리의 탄생 이후 히데요시의 눈 밖에 나게 된다. 고야산으로 추방된 뒤 할복 명령을 받아 자살했고 히데쓰구를 따르던 무리들 역시 잔인하게 처형되고 만다.
간파쿠 자리에서 물러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불임의 몸이오 히데요시의 아들 히데요리는 다른 남자의 씨앗이며 요도도노는 다른 남자와 몸을 섞는 음탕한 계집이라는 세간의 소문을 듣게 된 히데요시가, 소문의 진원지는 후계자 자리를 굳히려는 히데쓰구와 그를 따르는 무리가 아닌가 하여 진노한 끝에 대대적인 숙청을 명했던 것이다. (숙청의 이유 부분은 소설적인 허구)
1597년 게이초의 역 (정유재란) 발발.
명나라 군대의 참전과 이순신의 해양 보급로 차단, 곳곳의 조선 의병으로 인해 일본군은 고전에 고전을 면치 못한다.
1598년 히데요시가 사망하면서 조선에서 싸우던 장수들이 본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죽기 직전 히데요시는 이에야스를 비롯한 대신들에게 무릎을 꿇고 울면서 히데요리를 잘 돌보아줄 것을 당부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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