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비군 훈련
광인대학교 신축 본관 대강당에서 긴급 예비군 훈련이 열리고 있다. 복학한 예비군은 물론이거니와 교직원 일부까지 참여한 대대적인 교육으로, 이번 학기부터 교양필수 과목으로 결정된 ‘보건 안보’ 과목을 여름 계절학기 수강과목으로 신청한 학생들까지 해서 수 백 명의 사람들이 대강당 안에 빼곡히 앉아 있다. '보건 안보' 과목의 경우 여름철에는 더운 날씨로 인해 실내 동영상 교육으로 대부분 진행되는지라 일부러라도 여름 계절학기를 신청하는 학생들이 있기도 했다.
두꺼운 검은 커튼이 창밖에서 들어오는 빛을 막고 있다. 인공으로 만들어진 어둠 속에서 영사기 한 대가 강당 앞 하얀 스크린에 빛줄기를 투사한다. 요즘 연일 화제가 되고 있는 전염병에 대한 동영상 교육이 진행 중인 것이다. 감염된 사람은 불안 초조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며 그 결과 반사회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으로, 바이러스가 발생한 지역의 사람은 새로 개발한 반투명의 초록색 해초노끈을 통해 면역물질을 체내 주입해야만 해당 전염병을 피할 수 있다고 화면 속 동영상의 여자 아나운서가 설명하고 있다.
군에서 제대하여 이번 학기 갓 복학한 복학생 진교로서는 훈련소 입대 직후부터 제대 당일까지 귀 따갑게 들어왔던 얘기로, 그 자신이 분대장이 되었을 때 중대 내 사병들을 대상으로 정신교육을 하기도 했었던 내용이기도 하다. 전염병을 유발하는 바이러스에 감염될 경우 처음에는 포악해진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온몸에 수포가 생기게 된다. 수포가 생긴 인간은 바이러스의 숙주가 되어 새로운 인간을 찾으러 나선다. 전신에 생긴 수포로 인해 24시간 밖에 살지 못한다. 다른 인간을 공격해서 그 바이러스가 타인에게 옮겨질 경우 증세가 완화되어 24시간 그 이상을 살 수 있다. 고통에 몸부림치며 다른 인간을 공격하는, 감염된 인간들을 ‘좀비’라고 부른다... 이런 강의 내용은 관련 업무를 맡았던 부대에 소속되어 있었던 진교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이야기이자 더 이상은 듣기 싫은, 어쩌면 혐오스럽기까지 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진교는 고개를 돌려 뒤를 본다. 영사기의 빛줄기 속으로 셀 수 없이 많은 먼지들이 보인다. 강당 가득한 사람들이 내뿜는 이산화탄소로 인해 공기는 탁하다. 창문은 닫혀져 있고 커튼까지 내려져 있는지라 환기는 전혀 되지 않는다. 갑갑한 공기 속에서 연신 하품을 하던 진교는 하품 끝에 나오는 눈물을 손으로 훔치고는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한다. 수요일마다 있던 군대 정신교육 시간에도 봐왔던 그 지루한 동영상이 이제 20분 밖에 지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30분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사실은 진교에겐 참을 수 없는 따분함으로 다가왔다.
심심해진 진교는 옆자리에 앉은 초등학교 동창생 광민을 바라본다. 공대생 광민은 최신 스마트폰을 꺼내서 실시간 뉴스를 검색하고 있다. 광민을 보고 있으니 여전히 구형 핸드폰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신세가 초라하게 느껴진다. 초등학교 시절에야 은행원인 아버지를 둔 진교의 집이 더 부유했었다. 그에 비해 월남전 참전 군인이었던 아버지가 오랜 병환 끝에 돌아가신 유복자(遺腹子) 광민의 집은 학교 준비물을 챙겨오기조차 벅찼었으나 10 여년의 시간이 흐른 뒤 두 집의 경제적인 위치는 바뀌어져 있었다. 비싼 기계값은 물론이거니와 한 달에 5만원씩 내는 돈이 지금의 진교에겐 버거운 것이다. 기본료가 만 원도 안되는, DMB나 겨우 나오는 싸구려 핸드폰을 슬쩍 바지 속으로 집어넣은 진교는 광민의 스마트폰 화면을 힐끔힐끔 쳐다본다. 요즘 연일 뉴스에 나오는 반정부 시위 소식이 포탈 메인 화면에 크게 올라와 있다.
“오늘 부산 서면에서도 시위한다 카드라. 니도 같이 갈래?”
광민의 최신 스마트폰 화면을 힐끔힐끔 훔쳐보다가 광민과 눈이 마주친 진교는 어색해진 마음을 숨기기 위해 사직야구장 롯데 야구 경기라도 보러가자는 말투로 대뜸 시위 얘기를 꺼낸다. ‘이게 말로만 듣던 최신 아이폰이가? 갤럭시 S하고는 뭐가 다른데? 와이파이는 뭐고 2G는 뭔데? 한 달에 돈은 얼마씩 내노? 할부는? 제일 싼 정액제는 얼만데?’ 광민에게 묻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자존심상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채 시위 얘기만 하고 만다.
“김명삼이 금마 그기 대통령한다고 나댈 때부터 알아봤다. 금마 그기 나라 다 팔아묵는다 아이가. 도대체 나라 꼬라지가 이기 뭐꼬.”
광민이 고개를 들어 진교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임마가 이런 아가 아니었는데. 얌전한 아였는데.’ 이런 눈빛이다.
“김명삼이 그 사기꾼 개새끼”
진교는 툭툭 말을 내던진다. 공대생인 너는 기계나 만지고 있지만 인문대생인 나는 민심을 읽고 시국을 논한다고! 진교의 어설픈 자존심은 점점 과격한 발언으로 이어지고 주변 학생들이 그를 쳐다본다. 시위하고는 거리가 먼 성격의 진교로서는 행여 시위하러 함께 거리로 나가자는 얘기가 나올까봐 그쯤에서 적당히 입을 닫는다.
“마, 여기 이리 한 시간 내내 앉아만 있으면 호구 된다 아이가. 예비군이 적당히 땡땡이 쳐주는 맛이 있어야제. 나중에 보제이.”
짐짓 허세를 부리며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난 진교는 허리를 굽히고 살금살금 강당 뒤 출입문으로 향한다. 진교가 빠져나간 좌석은 앉을 자리가 없어 서서 교육을 받고 있던 중년 교직원의 차지가 된다. 국립대 교직원은 국가 공무원이라서인지 서른 중반은 넘어 보이는 행정실 여직원이 복학생, 교양과목 수강생과 함께 예비군 교육을 받는 지금 이 강당에 있는 것이다. 자리에 앉은 여직원은 감사의 뜻인지 살짝 눈인사를 한다. 눈인사와 함께 작게 벌린 입술로 두 음절의 단어를 살며시 발음한다. 입모양과 표정을 볼 때 ‘땡큐’라고 말한 것으로, 여자인 자신에게 매너 있게 자리를 양보한 것으로 착각한 것이리라.
진교는 여직원의 눈인사를 뒤로 하고 강당 밖으로 나간다. 출입문 밖에는 장교 출신 예비군 동대장과 ROTC 장교가 뭔가 비밀스런 환담을 나누고 있다가 강의 중간에 나온 진교와 눈이 마주친다. 진교는 설사라도 난 듯 손가락으로 아랫배를 가리키며 그 자리를 피한다. 긴급, 서바이버, 비상 등의 단어가 진교의 귀에 얼핏 들렸지만 그 소리는 서둘러 화장실을 찾아가는 진교의 발자국 소리에 이내 묻히고 만다.
대강당이 있는 5층에서 계단을 통해 한 층 걸어 내려와 4층 구석에 있는 화장실로 진교의 발걸음이 향한다. 아무도 없는 화장실에 들어간 진교는 창문을 열고 바깥 공기를 잠시 마셔본다. 환풍기가 있는 맨 끝 칸으로 들어간 진교는, 말년 병장 시절 종종 그러하였듯이 좌변기 커버를 내리고 그 위에 거꾸로 올라 앉더니 좌변기 물탱크 위에 두 손을 포갠 뒤 고개를 파묻고 잠을 청한다. 화장실 문틈 밑으로 앉은 이의 신발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누군가 화장실에 들어와본다고 해도 사람이 있다고는 여기지 않을 것이다. 샤르르 샤르르... 환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진교의 귀에 고즈넉한 자장가처럼 들린다. 30분 정도 잠시 자고 1교시가 끝난 쉬는 시간에 강당에 들어가겠다는 마음이었지만 새벽까지 작성했던 두 편의 레포트 때문에 피로가 쌓였기 때문일까, 진교의 잠은 30분 만에 끝나지 않았다.
건물 전체가 울리는 듯 시끄러운 소리에 진교가 잠에서 깨었을 때는 화장실에 들어간지 2시간이 훌쩍 지나갔을 때였다. 오전 9시부터 시작한 교육이 11시를 넘어 종료 시간인 정오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시작할 때 한 번, 종료할 때 한 번 기본적으로 두 번은 출석체크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진교이기에 서둘러 화장실 밖으로 향한다. 화장실 문을 열고 계단을 올라 교육이 진행되고 있는 5층에 도착한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초록색 노끈의 기나긴 행렬이었다. 반건조된 미역이나 다시마처럼 보이기에 ‘해초노끈’이라고 불리는 그 물질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체라도 되는 듯 강당 안으로 향했다. 해초노끈이 지나간 자리는 끈적끈적한 초록색 점액이 남아 있었다. 진교는 그것을 밟지 않도록 조심하며 강당으로 다가갔다.
강당 안에는 동대장과 ROTC 장교, 그리고 언제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군인들이 인원을 통제하고 있었다. 강당 안의 사람들은 열외 된 몇 사람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해초노끈 주입을 기다리고 있었다. 해초노끈이 코로 들어간 사람은 일시적으로 호흡 이상을 일으켜 컥컥 기침을 한다. 몇 번의 기침이 끝나고 해초노끈이 뇌에 면역물질을 완전히 주입하면 언제 기침을 하기라도 했냐는 듯이 아주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면역물질이 주입되면 돌연변이 바이러스로부터 자유를 얻게 됨을 물론이거니와 행복한 감정, 우수한 지능, 고양된 신체능력을 얻게 된다. 시중의 의료기관에서 자비를 들여 해초노끈 주입을 할 경우에는 5만 원 이상이 들며 의료보험이 안 될 경우 30만원이 넘는 것으로 심각한 어조와 자극적인 영상으로 진행되는 시청각 교육을 방금 전까지 보고 있던 강당의 사람들에게는 거부할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간단한 문진(問診)과 혈액검사가 이뤄지고 난 뒤 합격자는 강당의 앞으로 걸어가서 해초노끈 투입 행렬의 일원이 된다. 수 백 명의 인원 중 불합격된 이는 두 사람으로, 대장암 판명을 받았다는 이와 중증의 피부염을 앓고 있는 이 둘이었다. 창백한 안색에 식은땀, 방사선 치료 때문일까 듬성듬성해진 머리카락까지 암환자로 볼 수 있는 사람과 턱 주변에 이미 수포가 발생한 사람, 이렇게 육안으로 이미 드러날 정도로 정상적이지 않은 몰골이기에 해초노끈 투입을 위해 강당 앞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은 두 사람을 안타깝게 바라본다. 이제 곧 있으면 그 안타까운 마음조차 사라질 것이다. 해초노끈은 행복감(幸福感)만을 느끼게 해줄 것이니 말이다.
2. 살처분
정오가 되었을 때 4교시가 마쳤음을 알리는 벨이 울린다. 이때 쯤 강당 안의 해초노끈 투입은 마무리되었다. 강당 밖 4층과 5층 사이의 계단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이 광경을 지켜보던 진교의 귀에 사이렌 소리가 들린다. 군대 시절 그가 속했던 부대에서 파견 근무를 나갔을 때마다 들었던, 익숙한 소리인 것이다.
“여러분 지금 이 상황은 실제 상황입니다. 좀비 바이러스가 지금 이 지역에 퍼졌습니다. 지금 이 상황은 실제 상황입니다. 당국의 지시에 따라 주시기 바랍니다.”
건물은 봉쇄되었다. 해초노끈이 주입된 인간들, 마치 만성간염에라도 시달리듯 눈동자가 노래진 일군의 무리들을 제외하곤 지금 이 상황이 불안하지 않는 이는 없었다. 수포 바이러스는 공기 중에 퍼졌다. 그 돌연변이 균에 대한 항체가 있는 해초노끈을 주입하지 않은 극소수의 인간들은, 24시간 내에 전신의 피부에 수포가 생겨 고통스럽게 사망하게 되거나 선택하지 못한 폐기물로 간주되어 해초노끈 인류에게 살처분(殺處分)을 당하거나 하는 두 갈래 갈림길에 서게 된 것이다.
폐기물의 살처분을 담당하는 부대에 복무하여 인간이 같은 인간을 불태우는 작업을 했던 진교로서는 지금의 이 상황은 악몽과 같은 것이었다. 특수 차량에 탑승한 부대원들은 폐기물들을 한 곳으로 모이게 만든다. 이 과정은 속칭 ‘토끼몰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토끼몰이가 끝나고 나면 수포와 땀으로 범벅이 된 몇 명이 남는다. 그 중 몇 명은 끝까지 격렬하게 저항하고 또 다른 몇 명은 체념한 듯 순순히 운명을 받아들이고 기도하듯 무릎을 꿇고 엎드린다. 특수차량에 탑승한 부대원이 화염방사기 발사 버튼을 누르면 폐기물 소각이 시작된다. 폐기물들이 까맣게 타고나면 주위에 접근금지 팻말을 붙이고 상부에 작전 완료 보고를 한다.
난치병으로 인해 해초노끈 주입 대상이 되지 못한 두 명은 대강당 밖으로 뛰어나온다. 그들 역시도 앞서의 예비군 동영상 강의를 통해 자신들의 운명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대충이나마 짐작은 하고 있는 것이다. 엘리베이터는 운행 중지되었다. 1층 출입문으로 나가기 위해서 계단으로 향하던 그들과 진교가 만난다. “여기, 여기!” “빨리, 빨리!” 계단을 통해 밖으로 나가려는 그들은 교직원으로 짐작되는 남자를 만난다. ‘서무과 김광규’ 가슴에 달린 명찰에는 그렇게 써있었다. 광규는 그들을 본관 2층으로 안내한다.
“여긴 정문이 아닌데요?”
“정문은 이미 봉쇄되었습니다. 나갈 수 있는 길은 여기 밖에 없어요.”
본관 2층 기계공학과 ‘박상학’ 교수 연구실 앞으로 일행을 이끌고 간 광규는 주머니 속의 열쇠를 꺼내더니 연구실 문을 연다. 오랜 기간 해외연수를 나갔는지 책상과 책장 곳곳에 뽀얀 먼지가 쌓여 있다. 책상 위에 어지럽게 놓여진 A4 인쇄물 속에 적혀진 학부생 명단 속에 광민의 이름이 눈에 띈다. 국가유공자의 아들 광민은 군면제의 몸으로, 지금 졸업반이었다. 학점관리를 위해 1학년생이나 들음직한 교양필수 과목을 재수강하는 과정에서 이날 대강당에서 우연히 진교와 만나게 된 것이다. 광인대 최고 인기학과에 수석 입학한 광민은 전액장학금으로 4년 동안 대학을 다닌 뒤 이제 곧 미국 퍼듀대 대학원에 진학하게 된다. 눈앞에 보이는 A4 인쇄물은 퍼듀대 출신 ‘박상학’ 교수의 입학 추천서였다. 책장 한 곳에 있는 작은 액자에는 박상학 교수와 광민이 다정하게 함께 찍은 사진이 있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대학생 아들을 잃은 교수와 고엽제 증후군으로 아버지를 잃은 제자의 애틋한 정(情)은 캠퍼스에서 보기 드문 훈훈한 미담(美談)으로 기사화되었더랬지.
진교가 잠시 딴 생각을 하는 동안 광규가 연구실 창문을 연다.
“여기로 내려가면 됩니다.”
“뒷문은요?”
“뒷문도 이미 봉쇄되었을 겁니다. ‘그들’은 철저하거든요.”
체육학과 학생들이 사용하고 남은 듯 뜀틀이 창문 밑 건물 벽에 가지런히 기대어져 있다.
“자, 이렇게 해보세요.”
광규가 먼저 시범을 보인다. 한 명씩 창틀을 쥐고 뜀틀 위에 올라선다. 뜀틀에서 바닥으로 내려온 일행의 눈에 저 멀리 우루루 몰려다니는 해초노끈 인간들이 보인다.
“저들에게 걸리면 끝장입니다. 자 이리로 오세요.”
광규가 가로수 사이로 일행을 안내한다. 한참을 그렇게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이동한 뒤 본관 뒤 금악산(錦岳山)으로 향하는 쪽문을 통해 대학 밖으로 나선다. 이미 대학 내에서 살처분이 이뤄지고 있는지 어디선가 살타는 냄새가 흘러나온다.
오리구이 식당 한 곳으로 광규가 일행을 안내한다. 광규의 얼굴을 본 식당 주인이 다른 방의 손님을 광규 일행에게 인사시킨다.
“광규씨, 살아계싰네예.”
“덕분입니다.”
“도서관은예?”
“도서관은 창문과 출입구가 잠긴 채 당했어요.”
진교에게도 그 손님이 왠지 낯익다.
도서관 2층 인문학 분야 도서 대출을 담당하는 직원이었다.
“이학깁니다.”
“체육학과 김영조입니다. 수영 전공입니다.”
“아, 전국체전 금메달. 그리고 이 분은?”
“국어국문과 최승헌입니다. 쿨럭쿨럭”
“이 분은 몸이 많이 안좋으신가 보네요?”
“제가 지금 대장암 항암 치료 중이라서요. 쿨럭쿨럭”
“영조씨는?”
“수포가 발생하였지요. 턱에, 여기”
“놈들은 이걸 좀비 바이러스 때문이라고 부를 겁니다.”
“그쪽은?”
“아, 예. 저... 언... 철학과 서진굡니다.”
진교는 과(科)를 속인다. 사실대로 말해봤자 알아듣는 이는 몇 없었다.
[어너 하꽈세요?]
[어너 하꽙니다]
[어너 하꽈냐구요?]
[어너 하꽙니데이]
[어너 하꽈나니까요?]
[어너 하꽈라구요]
낯선 이에게 학과를 소개할 때면 이런 식으로 몇 번의 문답이 오가는 것이 통상적이었다. ‘어느’와 ‘어너(언어)’, ‘으’와 ‘어’가 구분이 안 되는 경상도 사람의 혀와 귀를 탓해야 될 것인지 생긴 지 오래되지 않은 학과의 얕은 인지도를 탓해야 할 것인지 그런 문답이 오갈 때면 막막하기 그지없었다. 몇 번의 문답 끝에 학과 이름을 간신히 알려주고 나면 거기서 뭘 배우느냐는 질문이 이어진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두 번 볼 일 없는 낯선 사람들을 만날 때면 ‘국문과’라고 대충 둘러대기도 하는 것이 진교였다. 국문과라고 얘기하면 문답은 쉽게 끝난다. 소쉬르, 훔볼트, 촘스키, 변형생성문법을 설명할 필요도 없이 말이다. 국문과 학생이라고 하면 기껏해야 좋아하는 소설가가 누군지 묻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그럴 때면 이문열, 황석영, 김동인 같은 알만한 소설가 이름에서 적당히 골라잡아 대답하면 되는 것이었다.
복수전공이기 때문에 ‘국문과’라고 하는 것이 마냥 거짓말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었건만 국문과 학생이자 광인대 국문과의 상징과도 같은 최승헌을 눈앞에 두고 있으니 차마 국문과 학생이라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짧은 말더듬 뒤에,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전과(轉科)까지 생각했던 ‘철학과’ 이름을 대고 만다.
“아, 예. 저... 언... 철학과 서진굡니다.”
최승헌, 재학 중에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평단의 격찬을 받은 문학계의 신성(新星). 시(詩)로는 ‘잎 속의 검은 잎’의 기형도에 버금가고, 소설로는 ‘고아떤 뺑덕어멈’의 김소진을 연상시킨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는 승헌은 이른 나이에 발병한 대장암과 거기에서 생겨난 천재문인의 요절(夭折)이라는 드라마까지 겹쳐져 문학 꽤나 좋아한다는 사람들 사이에 신드롬을 일으킨 인물이었다. 몇 달 전 지역신문 주말섹션 1면에 소개되었을 때의 사진만 해도 미남 탤런트 차인표가 안경을 쓴 듯한 인상이었는데 지금은 미라처럼 뼈만 남은 탓에 공일오비 정석원을 닮은 얼굴이 되어있다.
“진교 학생은 어디가 아파서 불합격되셨나요?”
“저는...”
진교가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살처분을 피해 도망쳐 나온 또다른 인원이 식당에 막 도착한다. 여자다. 나이는 대략 서른 중반. 식당 주인이 땀을 닦으라며 수건을 건네자 작은 소리로 들릴락말락하게 "땡큐"로 화답한다. 대강당에서 스쳐지나갔던 여직원이다. 그때처럼 진교에게 눈인사를 한다.
“여기서 또 만났네요. ‘김명삼이 사기꾼 개새끼’ 맞죠?”
“아, 예...”
“아는 분이세요?”
“이분은, 시위 가담하자고 학생들을 선동한 요주의 인물이시죠.”
“아, 사상범이었군. 우리 같은.”
“아, 예... 서진교라고 합니다.”
“저는 박미경, 그냥 '리나'라고 부르세요. 그게 더 편해요.”
“아무튼 잘 만났습니다. 김명삼 살인 정권 퇴진을 위해 함께 합시다. 동지들”
3. 오라이 (All right)
대략적인 인사가 한 바퀴 돌았을 무렵 식당 주인이 그들에게 다가온다.
“인사들 끝냈으면 후딱 출발하입시더. 이제 곧 금마들이 몰리올끼라예.”
등산으로 땀을 뺀 뒤 오리불고기로 배를 채우고 겻들인 산성 막걸리로 적당히 거나하게 취한, 등산객에서 취객으로 변한 사람들을 식당에서 근처 지하철역까지 태워 주는 용도로 쓰였음직한 봉고차 한 대가 그들 앞에 도착한다. 식당 주인이 커다란 아이스박스 하나를 들고 나와 봉고차 뒷좌석에 실어 올린다.
“마, 이거 가져가이소. 가다가 배고프면 구워 드시라예.”
리나가 운전석 옆 조수석에 앉고 나머지 일행이 뒷좌석에 차례대로 자리에 앉는다. 큰 기침을 하며 비틀거리는 승헌을 학기가 부축한다. 식당 주인이 팔을 크게 휘저으며 봉고차의 후진을 돕는다.
“자, 오라이. 오라이.”
후진해서 식당 밖으로 나간 봉고차가 산 밑으로 향하는 비포장길로 접어든다. 봉고차가 속도를 내자 차체가 크게 흔들린다. 승헌이 심하게 기침을 한다. 기침을 한 번 할 때마다 목 주변의 혈관이 터질듯 부풀어 오른다.
“거, 기침 좀만 참읍시다. 저 앞에 검문이 있으니 조심들 하시고. 거기 아저씨는 목하고 얼굴에 선크림 좀 바르세요. 어이 리나씨, 서랍에서 선크림 좀 꺼내줘. 저 아저씨 좀 바르게.”
선크림을 건네받은 영조가 얼굴과 목에 급에 바른다. 거울도 안보고 선크림을 바르다보니 밀가루를 덮어 씐 듯 허옇게 칠해진다. 보다 못한 진교가 한 마디 하고 만다.
“너무 튀지 않을까요?”
“햇빛 알레르기가 있어서 선크림을 많이 바른다고 둘러대지. 뭐. 그런 사람들 있잖아.”
비포장도로가 끝나고 포장된 길이 보일 때쯤 검문 중인 경찰들이 눈에 띈다. 봉고차가 가까이 가자 경찰이 차를 세운다. 나이든 경찰은 운전석으로 다가가고 신참으로 젊은 보이는 젊은 경찰은 봉고차 번호판을 조회한다.
“실례합니다. 잠시 검문 있겠습니다.”
“저 위에 오리고기집입니다. 잘 아실 텐데. 장수. 고기 배달하러 가는 길 아잉교.”
“봉고 안 좀 쪼매 볼 수 있겠는교?”
“뭔 일 있능교? 안하던 검문을 다하고.”
“학교 안에 좀비가 나타났다 안카는교.”
“좀비? 그래요? 아까 그 싸이렌? 그래, 처치 잘 했능교?”
“예. 걱정하지 마이소. 싹 다 정리했다 아인교. 깨끗하게.”
“경장님, 여기 이 식당 무허간데요. '장수 오리불고기' 여기 무허가에요.”
“마, 여짜 우리 서(署) 단골식당 아이가. 산 속에 무허가 식당이 어디 한 두 개인 줄 아나. 세상 사는 기 다 그렇고 그런 기지. 싸장님, 안그렇소?”
“하모예.”
검문이 적당히 끝나갈 무렵 뒷좌석의 승헌이 기침을 심하게 한다. “쿨럭쿨럭” 암투병으로 인해 약해질 정도로 약해진 승헌이 내장이 튀어나오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심한 기침을 하더니 끝내 구토까지 하고 만다.
“우웩” 승헌의 옆에 놓아둔 아이스박스 위에 구토물이 쏟아진다. 승헌의 기침과 구토로 차량 안이 시끌벅적하자 경찰이 봉고차 문을 열어본다.
“마, 무슨 일 있는교? 토했는 게베. 우야꼬.”
“예. 그 사람이 몸이 좀 안좋은 갑네예.”
“술 좀 마이 자싰는갑다. 고마 적당히 좀 드시지. 젊은 사람이 이기 뭐꼬.”
“그리 됐습니데이.”
“마 퍼뜩 가이소. 차 씨끌라먼 시껍 억수로 하겠네.”
“고맙십니더. 서장님께 조만간 인사 함 드리러 간다꼬 말 좀 전해 주이소.”
승헌의 갑작스런 구토에도 불구하고 덕담과 환담이 이어진 끝에 봉고차는 출발한다. 저 멀리 사라지는 봉고차를 바라보며 젊은 경찰이 나이든 경찰에게 말한다.
“경장님, 저 사람들 술냄새 전혀 안나고 토한 사람 빼곤 전부 멀쩡했습니다.”
“그래? 딴 사람들은 술이 쎈 기지. 금마만 술이 억수로 약한 기고. 술 못 묵고 사회생활 못하는 놈들 있다 아이가. 또옥 니 같은 놈.”
부산 시내를 빠져나가 고속도로로 접어들 무렵 차량이 속도를 높이자 승헌이 또 다시 구토를 시작한다. 얼마나 토했는지 이젠 숫제 누런 위액만 나오는 수준이다. 봉고차 안은 시큼하고 텁텁한, 메스꺼운 냄새로 가득 찼다.
“그만하라 안카나!”
말릴 새도 없이 학기가 주먹으로 승헌의 머리통을 내려친다. 머리를 맞은 승헌이 잠시 구토를 멈추더니 얼마 못가 다시 또 토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몇 번을 토하고 또 토했을까 승헌의 구토물 속에 피가 섞여 나오기 시작한다. 얼마나 갔을까 고속도로를 달리던 봉고차가 국도로 접어들더니 산길로 들어간다. 인적이 드물만한 산길에서 봉고차가 멈춘다. 문이 열리고 운전석의 싸장과 옆자리 조수석의 리나가 차에서 먼저 내린다. 싸장이 봉고차 뒷좌석 문을 열더니 고함을 지른다.
“위로 올라갈수록 검문도 빡실 긴데 여서 후딱 처리하입시다. 마, 전부 내리소.”
“안경잽이. 니부터 빨리 내려. 토하지 말라면 토하지 말아야지. 왜 토하고 지랄이야!”
“어이, 안경 좀 벗어보이소.”
영문을 모르는 승헌이 안경을 벗어 옆에 서있는 진교에게 건네준다. ‘싸장’이란 남자가, 심한 구토 끝에 기력이 다해 휘청거리는 몸으로 봉고차를 짚고 겨우 서있는 승헌의 멱살을 잡아 쥐고 숲 속으로 끌고 간다. 어디에서 꺼냈는지 굵직한 몽키 스패너를 손에 든 광규가 그 뒤를 따른다. 안경을 벗어서였을까 승헌이 더 비틀거린다. 도살당하기 직전의 소처럼 끌려가는 승헌이 같은 인문대생이요 국문과 수업 시간에 자주 얼굴을 마주친 진교를 바라본다. 진교가 승헌의 눈을 외면하지 못해 뭐라도 액션을 취해보려고 ‘그들’에게 다가가려 하자 체육학과 영조가 진교의 손목을 붙든다.
“어차피 얼마 못가 죽을 목숨인데.”
“그래도...”
“우야겠심니까. 산 사람은 살아야죠. 진교씨가 대신 죽을 랍니까”
“그거는... 쫌...”
승헌의 안경, 젊은 천재 문인(文人)의 트레이드마크 같았던 검은 뿔테 안경을 손에 꼭 쥔 채 진교가 웅얼거린다. 180cm도 넘는 큰 키의, 전국체전 금메달리스트 영조의 손에 손목이 꽉 잡히자 진교는 어른 손에 붙잡힌 어린애 같다. 턱걸이 1개도 제대로 못하는 물렁살 진교로서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이다. 그렇게 ‘그들’이 승헌을 데리고 숲 속으로 사라진 지 십 여분이나 흘렀을까. ‘싸장’이 봉고차로 다가오더니 학기에게 말한다.
“마 다 됐심다. 뒷좌석 트렁크에서 삽 좀 꺼내 주이소. 정리하구로. 아, 참 거기 트렁크에 빠나도 있다. 이 참에 여짜서 밥 묵고 가입시다. 점심 안드싰지예. 배도 고픈데. 좀만 기다리소. 오리불고기 맛있구로 해줄꾸마.”
학기가 봉고차 트렁크에서 삽을 꺼내 ‘싸장’에게 건네준다. 학기를 뒤따라간 영조가 가스 버너를 꺼낸다. 리나가 은박접시와 나무젓가락을 챙긴다. 진교가 오리고기가 든 아이스박스를 꺼내들려 하자 영조가 말린다.
“그거, 무거울 텐데 내가 들게요. 손목 만져보니까 운동 하나도 안하는 것 같던데,”
영조가 버너를 진교에게 건네주고 아이스박스를 자기가 든다. 아이스박스는 무게도 무겁거니와 승헌이 토한 구토물의 냄새가 지독할 텐데 영조가 그걸 대신 받아드는 것이다. 진교의 팔 힘으로는 가스 버너도 제법 무겁긴 하지만 고기가 가득찬 아이스박스보다는 가볍다.
“아, 예... 고맙습니다. 그... 그런데 가스는?”
“맞다. 까스를 안 갖고 왔네. 빠나 나한테 주고 가스 챙겨 오이소.”
진교가 버너를 ‘싸장’에게 건네주자 ‘싸장’은 아무 것도 안 든 학기에게 버너를 들게 한다. 숲 속으로 들어가니 광규가 보인다. 그 발 밑에 승헌이 쓰러져 있다. 싸장이 광규에게 말한다.
“그 냥반, 소지품 있는 거 꺼내서, 태울 거 태우고 갑시다.”
광규가 승헌의 옷에서 소지품을 꺼낸다. 지갑, 구형 애니콜 핸드폰, 볼펜 한 자루와 작은 수첩 한 권이 나온다. 수첩을 펼쳐보니 앞의 몇 장 외엔 깨끗하다. 지갑의 돈은 광규가 챙긴다. 2만 3천원. 구형 핸드폰을 보더니 싸장이 한마디 한다.
“요새도 이런 폰 쓰는 사람이 있네. 애니콜? 볼펜, 수첩 가꼬갈 사람 없는교?”
진교가 볼펜과 수첩을 물끄러니 바라본다.
“댁이 가질라요?”
뿔테 안경에 이은 천재 문인의 유품이다. 진교가 볼펜과 수첩을 받아든다.
“아 댁도 핸드폰 있으면 이리 주이소. 인자부터 핸드폰 필요 없는 곳으로 갈텐께.”
진교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싸장’에게 건네준다.
“이기 뭐꼬? 싸이언? 이영애가 광고하던 그 기네. 그 참, 오늘 애니콜, 싸이언 다 보네.”
근처 개울가에 들려 아이스박스에 묻은 구토물을 씻어내고 온 영조가 일행과 합류한다.
“영조씨라고 했지요. 영조씨도 핸드폰 주이소. 아, 그래도 여기는 스마트폰이네. 옴니아.”
“지지난 달에 할부 끝났습니다.”
“고생했네요.”
핸드폰을 건네준 영조가 웃통을 벗더니 삽을 쥐고 구덩이를 판다. 메달리스트다운 근육질 몸이 땀으로 번들거리더니 사람 하나 충분히 묻을 구덩이가 금세 파진다. 진교가 욱욱 헛구역질을 하는 동안 학기와 광규, 싸장과 영조가 시체를 잡아 구덩이 안에 던져 넣는다. 흙이 덮이고 한 사람의 존재가 땅 속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들’은 거기서 고기를 구워 먹었다.
고기로 배를 채운 뒤 다같이 봉고차에 올라탄다. 승헌이 토한 구토물은 치워졌지만 차 안의 냄새는 여전하다. 승헌이 앉았던 뒷좌석 한 줄의 시트 커버와 바닥 매트도 빼서 내버린다. 그래도 냄새가 가시지 않아 창문을 활짝 연다. 차량이 후진을 하자 조수석의 리나가 창문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뒤를 쳐다보며 '오라이'를 외친다.
“오라이, 오라이!”
4. 생존자들 (Survivors)
이렇게만 가다간 북한으로 넘어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차량은 계속 북쪽으로 향했다. 싸장이 자신의 핸드폰을 광규에게 건넸고 광규는 싸장이 알려준 전화번호로 전화를 한다. 검문검색을 어디서 하는 지를 누군가가 알려주는지 싸장의 핸드폰으로 연락이 계속 왔다. 검문을 피해 고속도로에서 국도로, 국도에서 고속도로로 방향을 바꿔가며 북으로, 북으로 봉고차는 올라갔다. 이런 느낌은 입대 후 자대배치를 받기 위해 논산에서 의정부로 의정부에서 철원으로 옮겨갈 때 이후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그때처럼 진교의 허리에 통증이 밀려온다. 두 손으로 허리를 주무르는 진교를 보고 옆자리에 앉은 영조가 말을 건넨다.
“어디 아픕니까? 표정이 마이 안좋네요?”
“아... 예... 허리가 좀 아프네요. 차를 오래 탔더니.”
“운동 좀 해야겠심다. 운동부족이라예. 턱걸이 몇 개 합니까?”
초중고 통틀어 턱걸이라곤 1개도 해본 적이 없는 진교이지만 1개도 못한다고 솔직하게 말하기엔 자존심이 상한다.
“2개... 쯤 합니다.”
“남자가 허리 아프면 암 것도 못합니다. 스트레칭 꼭꼭 하시고 걷기 운동 많이 하세요. 그게 최곱니다. 수영도 허리에 좋구요. 철봉에 매달리는 것도 좋지요.”
“아... 예.... 그런데 제가 피부가 안좋아서 철봉에 매달리면 손에 알레르기가 생기더라구요. 벌겋게 달아오르고 물집 같은 게...”
“저도 그렇습니다. 쇠 알레르기. 피부 알레르기. 그럴 땐 장갑 끼고 하면 됩니다. 손바닥 빨간 장갑 아시죠? 그게 운동할 때 최곱니다.”
운전석의 싸장이 뒤를 슬쩍 돌아보며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마, 좀만 참으이소. 다 와갑니다. 쫌만 더 가면 됩니데이.”
20분 쯤 더 갔을까, 차가 멈추더니 ‘싸장’이 운전석에서 내려 뒷좌석 문을 열어젖힌다.
“여짜부터는 내리서 걸어 드가야 된다 아입니까. 학교 안이라 외부 차량은 주차가 안된다 카네요. 먼저 드가이소. 내는 차 주차 시키고 천천히 드가께요.”
“고맙십니다.”
“아 공기 좋다! 안개도 좋고.”
‘싸장’이 봉고차 운전석에 오르기 직전 진교가 ‘싸장’에게 다가간다.
“저기 사장님...”
“진교씨, 내한테 뭐 할 말 있는교? 고맙다꼬?”
“이영애 폰 아니라 김태희 폰인데예. 이영애는 훨씬 이전 폰입니다.”
“아 그러씀가. 내 잘 몰랐네. 암튼 그럼 잘 드가이소.”
“아... 예... 태워주시서 고맙습니다.”
‘싸장’이 운전석에 올라타고 진교는 혼자 중얼거린다.
“이영애가 언제 폰인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
봉고차가 떠나고 일행은 학교 안으로 들어간다. 진교에게 다가온 영조가 말을 건넨다.
“운전사한테 뭐라 캤습니까?”
“아... 예... 아무 것도 아닙니다.”
“운전사 금마 너무 믿지 마이소. 그라고 아까 불펜하고 메모지 있지요?”
“아... 예.... 여기.”
“4888, 부산 가 4888 뉴봉고. 백창주. 잘 적어 놓으세요.”
“아... 예... 4888 백창주”
“허리는 괘안습니까?”
“한 번씩 통증이 있는데 걸으니까 한결 낫네요.”
“시간 되면 제가 마사지 해드릴께요. 스포츠마사지. 근육 뭉칠 때 그게 좋습니다.”
“마, 빨리 오이소.”
“캄온, 허리업, 플리즈.”
진교와 영조가 뒤처져 걷자 앞서가는 광규 일행의 재촉이 이어진다. 앞서가는 그들을 따라잡기 위해선 뛰어야 되나 싶어 진교가 영조를 힐끗 쳐다보는데 영조가 주머니에서 조그만 쇳조각을 꺼내더니 그걸로 턱 밑을 긁는다. 쇠 알레르기 탓인지 턱 밑 피부가 금세 부풀어오른다. 벌겋게 달아오르더니 물집이 생긴다. 순간 영조와 진교의 눈이 마주친다.
“아... 예... 뛰어야겠죠?” 어색해진 진교가 먼저 입을 연다.
“아까, 썬크림을 너무 많이 발랐나 수포가 더 커지네요. 자, 뜁시다. 요이 땅!”
숨소리 하나 변화 없는 영조와 달리 진교의 이마엔 땀이 흐르고 호흡소리가 거칠어진다. 잠깐의 달리기 끝에 광규 일행 옆으로 온 진교와 영조에게 광규가 주의사항을 얘기해준다.
“밤이 되면 안개가 짙어져서 사람 잃어버리기 십상입니다. 딱 붙어서 잘 따라오이소.”
그들이 학교 정문을 지나 20분 쯤 걸어갔을까. 불이 꺼진 듯 컴컴한, 그러나 창을 가린 커텐 틈으로 빛이 새어나오는 건물로 들어간다. 출입구로 먼저 들어간 리나가 돌아서더니 나머지 일행을 향해 입을 연다.
"웰컴 투 서바이버스 (Welcome to Survivors)!"
담쟁이 넝쿨이 가득 들러붙은 붉은 벽돌 5층 건물. 반정부 비밀단체 Survivors, 생존자들의 아지트로 들어간다. 현관에 두 명이 맨 앞의 리나를 보고 인사를 한다.
“2층으로 올라가시죠. 다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땡큐" 리나의 눈인사가 이어진다.
2층에 있는 강의실로 올라가니 책상과 의자를 뒤로 몰아놓고 바닥에 깐 스티로폼 판을 침대 삼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 젊은이들이 보인다.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 하나가 리나 일행이 쉴 자리를 마련해준다.
“진교씨, 여기 좀 엎드려 봐요. 아까 말했던 스포츠마사지 해줄게요.”
“아... 예...”
“좀 아플 깁니다. 어지간하면 참으이소. 뭉친 근육이 풀리는 거라서 원래 좀 아픕니다.”
“아... 으윽...”
“많이 뭉칬네요. 억수로 딱딱하네요. 다 풀라면 시간 좀 걸리겠네요. 내일 또 해드릴게요.”
“아... 예... 고맙습니다.”
180cm를 훌쩍 넘는 큰 키에 근육질 몸매, 남자답게 생긴 얼굴에 친절하기까지 하니 스티로폼 판 위에서 휴식을 취하던 여학생들의 눈길이 몰린다. 여학생 한 명이 재빠르게 자판기 커피 한 잔을 뽑아 영조에게 건넨다.
“커피. 고맙습니다. 그런데 여기 화장실은 어디 있습니까?”
“남자 화장실은 저쪽으로 나가서 왼쪽으로 가면 됩니다.”
“여러분, 뜨거운 커피가 식기 전에 다녀오겠습니다.”
영조가 일어서서 강의실 밖으로 나가자 학생들 사이에서 삼국지 ‘관우’ 얘기가 나온다. 뜨거운 차를 두고 적장 화웅의 목을 베어온 관우를 언급하며 센스까지 있다면서, 화장실로 사라진 영조를 치켜 올린다. 강의실 가득한 수 십 명의 사람들, 특히 여자들의 인기가 영조에게 쏠리자 영조만큼 키가 크지도 않고 근육질도 아니고 남자답게 생기지도 못한 채 허리 아프다고 엎드려 있던 진교도 주춤주춤 일어서서 복도 왼쪽에 있다는 화장실로 향한다.
“화장실은 복도 왼쪽입니다.”
“아... 예... 알고 있습니다. 아까 들었습니다.”
강의실 문을 열고 진교가 나갈 때 아까 자리를 챙겨주던 20대 중반의 여자가 진교를 유심히 쳐다본다. 남들이 다 키 크고 몸 좋은 영조를 좋아해도 한 사람 정도는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싶기도 하다만 왠지 모르게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 든다. 입대 전 이 건물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 넓은 캠퍼스, 짙은 안개, 붉은 벽돌 건물, 왼쪽 끝에 있는 남자 화장실, 이곳은 중앙외국어대 안산 캠퍼스. 3년 전, 전국 언어학과 총연맹 대회, 줄여서 ‘전언총’이 열렸던 장소이다. 3층은 중앙외대 언어정보과학과 강의실이 있는 곳으로 그때 그 전언총 참석자들이 지금의 ‘생존자들’처럼 스티로폼 판 위에서 수면을 취했었다.
옛날 생각에 빠져 있던 진교가 화장실에 도착한다. 소변을 다 본 영조가 화장실 창문을 열고 밑을 내려다보고 있다.
“뭐 하세요? 커피 다 식는데...”
“여기 처음이시죠? 저기 저 쪽에 큰 호수가 있는데 거기 귀신이 있데요. 자살한 사람이 계속 다른 사람을 유혹한다네요. 안개가 짙어서 누가 사라졌는지도 모르는데 해 뜨고 보면 호수에 죽은 사람이 둥둥”
“아... 휴... 무슨 그런 끔찍한 소리를.”
“여기 사람들은 다 아는 얘기에요. 안개 짙어지면 사람 못 찾는다고. 사람 찾다보면 자기도 같이 호수에 빠져 죽는다고... 유명한 얘기죠. 재단 이사장이 캠퍼스 땅 일부를 팔려고 했는데 흉지(凶地)라고 소문나서 팔리지가 않았답니다. 손해가 컸죠. 그 때문에 한강 이남 제일 큰 캠퍼스 타이틀을 지금까지 유지하게 된 거구요.”
진교도 이미 알고 있는 얘기였다. 5층 건물 담벽을 가득 채운 담쟁이 넝쿨이 이제 갓 1층 벽을 타넘고 있던 그때, 진교는 이곳에서 과 선후배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있었다. 진교의 앞자리에는 막걸리를 권하며 한참 이념 설교를 하고 있는 1년 선배 이제훈이 앉아 있었다. 막걸리는 우리 쌀로 만들었다, 우리 쌀을 지켜야 한다, 쌀에는 민중의 혼(魂)이 담겼다, 식량 지배를 기도하는 미 제국주의로부터 우리 농민을, 우리 민중을 지켜야 한다고 제훈의 말이 이어진다. ‘종속이론’ 대목 쯤이었나, 참고 듣고 있던 진교는 어느 순간 제훈에게 대들고 만다. 연신 ‘아... 예...’ 마지못해 대답해주고 있는 중이었는데 제훈의 설교가 끝없이 길어지자 참지 못하고 술에 취한 척 종이컵에 든 술을 제훈의 옷에 뿌려버린 것이다. 지금 영조의 귀신 얘기도 끝없이 길어지자 그때처럼 슬금슬금 짜증이 올라온다.
“귀신 얘기 그만 하이소. 무서워서 오줌이 제대로 안 나올라카네.”
소변기에 바짝 붙은 진교의 사추리에선 오줌이 쫄쫄쫄 흘러나온다. 소변을 다 본 진교는 바지 지퍼를 잠그고 그런 진교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손에 쥔 쇳조각, 초소형 송신기를 바지 주머니에 슬쩍 넣는 영조였다.
5. 프락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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