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望の山 慾望の江 모노노케 도노 부분 습작

입맛이 없다며 식사를 거부하는 쇼군 이에미쓰 앞에 일곱가지 밥을 들고 가스가노쓰보네가 나타난다. 이럴 땐 늘 그렇듯이 가스가노쓰보네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며 이에미쓰의 기분을 달래준다. 가스가노쓰보네는 쇼군의 할아버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정실부인이었던 쓰기야마 도노의 이야기를 해준다.

 

'무엄하도다!(この ぶれりもの!)'라는 외마디 호통을 남기고 남편이 보낸 무사의 검에 의해 목이 잘린 쓰기야마 도노. 두 눈을 부릅뜨고 잘려나간 그녀의 머리통은 검시(檢屍)를 위해 이에야스에게 보내졌다. 이에야스가 그 머리통을 한참동안 들여다본다. 애틋한 정(情)이야 있건 말건 그래도 부부의 인연이다보니 남다른 감회가 이에야스의 가슴을 찌른다. 안타까운 마음에 시체의 두 눈을 감겨보려 하지만 그 부릅뜬 두 눈은 감겨지지 않는다. 죽은 후 경직되어 쪼그라드는 근육 때문인지 억울하게 죽은 원혼 때문인지 쓰기야마 도노의 입이 벌어진다. 부릅뜬 눈과 벌려진 입, 쓰기야마의 머리통은 이에야스를 향해 '무엄하도다!'라고 말하는듯 하다.

'모노노케가 되고 말았구나.' 이에야스가 탄식한다. 원혼의 원한을 자신이 아닌 다른 이에게 돌리기 위해 이에야스는 짐짓 큰 소리로 쓰기야마의 머리통이 들으란 듯이 외친다. "노부나가 공이여, 어찌하여 제게 이런 시련을 주셨나이까! 남편에게 그 아내를 죽이라니요! 어찌 제게 이런 시련을..." 

 

그 몇 해 후 오다 노부나가의 신변에 갑작스런 변화가 생겼다.

"적은 혼노지에 있다! (敵は 本能寺に あり!)"라는 구호와 함께 아케치 미쓰히데의 군사들이 혼노지에 난입한다. 얼마 전까지 주군으로 받들어 모시던 노부나가의 목을 베기 위해 아케치 미쓰히데의 군사들은 혈안이 되어있다. 혼노지(本能寺)에 불길이 솟아오른다. 배신자들에게 자신의 머리통을 내어주지 않으려는 노부나가는 솟아오르는 화염 속으로 몸을 던진다. 활활 타오르며 노부나가를 삼킨 불길은 한순간 여인의 노기어린 얼굴로 변한다. 부릅뜬 눈, 벌려진 입. 그 얼굴은 쓰기야마 도노의 얼굴을 닮았더랬다.

불이 꺼진 후 미쓰히데의 군사들이 혼노지를 샅샅이 뒤졌다. 노부나가의 아내 노히메, 노부나가가 아끼던 시동 모리 란마루의 시신은 쉽게 찾을 수 있었으나 정작 그들이 가장 원했던 노부나가의 시신만큼은 옷자락, 살점은 물론이요 타다 남은 뼛조각 하나조차 찾아내지 못하였다고 전해진다. 


野望の山 慾望の江 히데요시 중요연도

 

1568년 이에야스가 다케다 신겐과 가와지리 약정을 맺다.

1572년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 다케다 신겐의 군대에게 이에야스가 혼쭐이 나다.

노부나가와 동맹(기요스동맹)을 맺을 경우 동맹의 한 조각이 되지만 다케다 신겐과 맹약을 맺을 경우 자칫 흡수되어버릴 가능성이 있다. 이마가와 가문의 휘하 부대였으면서도 노부나가와 밀약을 맺고 이마가와 가문에게 등을 돌렸던 이에야스였기에 노부나가는 이에야스가 다케다 신겐과 연합하여 자신을 배신할 것 역시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이에야스는 노부나가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다케다 신겐에게 길을 그냥 내줄 수가 없었다. 이에야스는 과감하게 다케다의 군대와 자웅을 겨뤘고 그 결과는 참혹했다. (기존의 사실에 약간의 상상 추가)

 

1575년 나가시노에서 시타라가하라 전투가 벌어진다.

다케다 가쓰요리의 군대가 노부나가의 용병술에 말려 대패하고 만다.

 

1579년 이에야스의 정실 쓰기아먀도노(세나)와 그녀의 아들 마쓰다이라 노부야스가 사망

혈족인 이마가와 요시모토를 살해하고 이마가와 가문을 무너뜨린 오다 노부나가다에 대한 역심을 품은 쓰기야마도노는 노부나가와 동맹 관계인 이에야스가 역겨운 존재로 보인다.

며느리인 도쿠히메는 오다 노부나가의 장녀로 도쿠히메가 보낸 편지로 인해 모자의 역심이 노부나가에게 전해진다. 다케다 가문과 결탁하여 노부나가와 이에야스를 파멸시키려던 쓰기야마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결국 모자에게 남은 것은 할복 자살 뿐이었다. 자신의 목을 검으로 내리치려는 이에야스의 가신을 향해 쓰기야마가 외친다. "무엄하도다!" (무엄하도다 부분은 소설적인 상상)

이 해에 훗날 2대 쇼군이 되는, 이에야스의 3남 히데타다가 하마마쓰 성에서 출생한다. 그 어미는 쓰기야마가 아닌 다른 여자였었다. 이에야스는 도도하고 나이 많은 쓰기야마에게 호되게 당했던 탓인지 유난히도 신분이 낮고 어린 여자에게 욕정을 느꼈다. 신분이 높고 나이 많은 여자는 이에야스의 취향이 아니었다. 훗날 히데요시가 강제로 혼인시킨 히데요시의 여동생 아사히히메 같은 경우는 이에야스의 취향과는 그야말로 상극인 경우였더랬다.

 

1581년 다카덴진 성 함락. 다케다 가문이 무너지면서 노부나가를 견제할만한 세력이 없어졌다.

1582년 혼노지의 변 발생. 노부나가는 심복인 아케치 미쓰히데의 쿠데타로 인해 사망한다.

철권을 휘두르던 냉혹한 독재자가 외부의 적이 아닌 측근의 손에 의해 살해된 일본판 10 26 사건

 

1584년 고마키 나카쿠테 전투

아케치 미쓰히데의 쿠데타를 진압한 히데요시와 노부나가의 맹우였던 이에야스가 노부나가의 후계자 문제를 놓고 싸우게 된다. 전투에는 이에야스가 이겼지만 정치에서 히데요시가 이기면서 결국 히데요시가 1인자 자리에 오르게 된다. 당시로서는 무력이 건재햇고 미천한 히데요시와는 출신성분에서조차도 차이났던 이에야스로서는 크게 반발할 수도 있었지만 히데요시의 1인자 등극을 수용하고 만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2007년 이명박과 박근혜 사이에서 벌어졌던 치열한 경선과정에서의 문제점, 표의 등가성 문제와 지금에서야 문제가 되는 돈봉투 문제 등 패자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미련이 남을듯한 결과임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선에서 승자의 승리를 받아들였다는 점에서는 양자의 공통점이 있다고 하겠다. 

 

1585년 이에야스의 심복이던 이시가와 가즈마사가 히데요시 편으로 돌아선다.

친박의 좌장인줄 알았던 한나라당 김무성 의원이 친박계의 수장인 박근혜를 버리고 이명박 친이계로 들어가 박근혜를 비판하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보면 될 터.

 

1586년 히데요시는 이에야스에게 자신의 여동생 아사히히메를 시집보내고 이에야스는 상경하여 히데요시와 회담을 한다.

삼국지 속에 등장하는 손권이 자신의 여동생을 유비에게 시집보내는 장면이 오버랩되긴 하지만 히데요시의 여동생 아사히히메는 이미 시집을 갔던 유부녀였고 그걸 억지로 이혼시켜서 이에야스에게 떠안긴 것으로 이에야스 측근들이 격렬한 반감을 보였다고 한다. 이에야스 역시도 자신의 여성 취향과는 전혀 다른 억지 결혼에 마지못해 응했고 이에야스 측의 반응이 시원치 않자 히데요시는 자신의 늙은 모친까지 이에야스에게 보내서 이에야스를 초대, 정국의 안정을 도모하려한다. 억지 결혼의 장깃말이었던 아사히히메는 그 몇년 후 병으로 죽고 말았다고.

이 해에 히데요시는 자손(子孫)의 번영을 기원하며 호코지(方廣寺)를 건립하는데 이후 이 절은 지진과 화재로 붕괴되어 히데요시가 죽은 뒤 아들 히데요리 때에 이르러서야 재건된다. 대불전의 범종에 새겨진 '군신풍락 국가안강(國家安康 君臣豊樂)'이라는 글귀 때문에 이에야스의 분노를 샀던 것이 바로 이 호코지(方廣寺) 재건에 얽힌 이야기.

 

1590년 히데요시가 자신에게 반발하던 호조 가문의 오다와라성을 공략한다.

오다와라성 함락 직전에 히데요시와 이에야스는 함께 소변을 보며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여기에 살을 덧붙여서 별똥별이 떨어지는 밤하늘을 보며 소변을 보며 각자의 소원을 비는 두 남자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시원스레 방뇨를 마친 이에야스가 히데요시에게 묻는다. "오다와라 성을 빨리 점령하도록 비셨습니까?"

이에야스와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로 쫄쫄쫄쫄 가느다란 소변줄기를 내보내던 히데요시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딴소리를 한다. "저 성이 함락되면 간핫슈(간토)를 자네에게 드리겠네."

오다와라 성이 함락되자 히데요시는 이에야스에게 지금까지 잘 다스려온 기존의 영지를 버리고 간핫슈(간토)로 옮겨갈 것을 명령한다. 가신들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에야스는 흔쾌히 그 명을 받아들여 간토로 떠난다. 쉽게 얘기하면 지금까지 잘 다스려온 송악(개성)을 버리고 민심이 안정되지 않은 한양으로 옮겨가라는 얘기인데 이때 한양으로 옮겨가서 길도 새로 깔고 성도 새로 세우고 궁궐도 새로 짓고 알짜배기 노른자 땅으로 만들어 조선왕조 500년의 도읍지로 삼았더라...는 식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소변줄기의 약함으로 히데요시가 불임임을 암시하는 부분, 별똥별을 보며 소원을 비는 부분은 만들어낸 이야기이나 오다와라성 함락을 앞두고 히데요시와 이에야스의 동반 방뇨 자체는 있었던 이야기)

 

1591년 아이가 없던 히데요시는 조카 히데쓰구를 양자로 삼아 간파쿠 자리에 올려준다.

히데쓰구가 히데요시의 후계자로 나섰을 때 히데요시의 측실 차차(요도도노)가 아이를 낳는다. 아이 이름은 쓰루마쓰라고 하였으며 차차는 요도성(城)을 하사받으며 요도노가타, 또는 요도도노로 불리게 된다. 조선시대로 비유하면 혜경궁 마마, 혜경궁 마님 같은 칭호인셈. 하지만 갓난아기 쓰루마쓰는 이내 사망하고 만다. 아이가 없던 히데요시가 늙그막에 두었던 측실의 품에서 2세를 보게되자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히데요시의 총애를 받았던 다도의 명인 센노리큐는 히데요시에게 히데요시 본인이 불임의 몸임을 얘기했다가 2세 탄생으로 기뻐하던 히데요시의 미움을 산 끝에 1591년 이 해에 할복자살을 하게 된다. 다도의 명인 센노리큐는 다인(茶人)의 명예를 걸고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죽어간다. (부분적으로 허구)

 

1592년 분로쿠의 역(임진왜란) 발발.

간토로 영지를 옮긴 이에야스는 새 영지 관리를 핑계삼아 조선으로 건너가지 않는다.

이에야스와 차차의 동침. 히데요시가 이에야스에게 건낸 복 요리 접대가 이어진다. (허구)

 

1593년 히데요시의 둘째 아들 히로이마루(히데요리)가 태어난다. 히데요시는 갓 태어난 둘째아들을 냉대하였으나 곧 마음을 가다듬고 애지중지여겼다고 한다.

1595년 히데요시의 조카이자 양자로 히데요시의 간파쿠 자리를 물려받았던 히데쓰구가, 히데요리의 탄생 이후 히데요시의 눈 밖에 나게 된다. 고야산으로 추방된 뒤 할복 명령을 받아 자살했고 히데쓰구를 따르던 무리들 역시 잔인하게 처형되고 만다.

간파쿠 자리에서 물러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불임의 몸이오 히데요시의 아들 히데요리는 다른 남자의 씨앗이며 요도도노는 다른 남자와 몸을 섞는 음탕한 계집이라는 세간의 소문을 듣게 된 히데요시가, 소문의 진원지는 후계자 자리를 굳히려는 히데쓰구와 그를 따르는 무리가 아닌가 하여 진노한 끝에 대대적인 숙청을 명했던 것이다. (숙청의 이유 부분은 소설적인 허구) 

 

1597년 게이초의 역 (정유재란) 발발.

명나라 군대의 참전과 이순신의 해양 보급로 차단, 곳곳의 조선 의병으로 인해 일본군은 고전에 고전을 면치 못한다.

1598년 히데요시가 사망하면서 조선에서 싸우던 장수들이 본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죽기 직전 히데요시는 이에야스를 비롯한 대신들에게 무릎을 꿇고 울면서 히데요리를 잘 돌보아줄 것을 당부했다고 한다.


목마와 숙녀: 지금은 없는 대호 공주를 위하여 야구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롯데 자이언츠의 성적과
거액을 받고 떠난 공주의 몸무게를 이야기한다

공주는 롯데를 버리고 거저 감량 소식만 울리며
현해탄 너머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傷心)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공주는
일본 프로야구 오릭스에서 뛰던
찬호가 오고
승엽이 오고
라쿠텐의 김병현마저 애증(愛憎)의 그림자를 버릴 때
뱃살이 출렁이던 4번 타자는 보이지 않는다

FA는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孤立)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作別)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꼴빠팬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꼴데.....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자이언츠의 미래(未來)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마~ 마~ 소리를 기억(記憶)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意識)을 붙잡고
우리는 롯데 자이언츠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靑春)을 찾는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人生)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잡지(雜誌)의 표지(表紙)처럼 통속(通俗)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공주는 오릭스에 있고
마~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야구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http://nicekakim.com.ne.kr/music/woodenhorse-lady.wma


野望の山 慾望の江 (가스가노쓰보네 부분) 습작

오다 노부나가를 시해한 아케치 미쓰히데의 심복 중에 사이토 도시미쓰(斎藤利三)란 무사가 있었더랬다. 한국 현대사로 얘기하면 박정희를 암살한 김재규의 측근에 해당하는 인물인데 한국의 김재규가 그랬듯 아케치 미쓰히데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질풍같은 반격에 휩슬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만다.

쿠데타를 주도했던 아케치 미쓰히데 가문은 풍비박산이 되었으니 그 측근인 사이토 도시미쓰(斎藤利三)의 가문 역시 밑바닥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무력으로 천하를 감싸겠다며 천하포무(天下抱武)를 내세웠던 오다 노부나가의 철혈 유신정권은 중앙정보부장 아케치 미쓰히데의 습격으로 인해 궁정동 아니 혼노지에서 끝이 나게 되었고 그 이후는 다들 알다시피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로 연결되었더랬다.

 

로쿠조가와(川)에서 책형을 당해 죽은 사이토 도시미쓰에게는 딸이 있었는데 그 이름은 사이토 후쿠(斎藤 福)로 이름의 후쿠는 한자로 복(福)이라고 쓰니 이름의 기운 때문인지 가문이 멸족하다시피 한 상황에서도 살아남아 훗날 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쓰가 되는 어린 다케치요의 유모가 되어 도쿠가와 가문의 기틀을 다지는데 일조를 하게 된다. 

멸족의 위기에 처했던 역도(逆徒)의 자식에서 조정으로부터 가스가노쓰보네(春日局)이라는 명예로운 호칭까지 받으며 오오쿠(大奥)의 1인자가 되는 사이토 후쿠. 그 '사이토 후쿠'가 <野望の山 慾望の江> 이야기의 화자(話者)가 되면 어떻겠냐는 생각을 해본다.

 

그녀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유창한 이야기 솜씨가 있었으며 입이 짧고 병약한 다케치요는 유모의 이야기에 홀딱 빠져있었다. 그녀의 이야기 솜씨에 빠져 있는 것이 어디 어린 다케치요 뿐이겠는가.

'오고쇼'이자 다케치요의 할아버지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그녀의 이야기에는 귀를 기울였으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손자 다케치요와 구니마쓰(훗날의 도쿠가와 타다나가)의 3대 쇼군 계승을 둘러싼 암투는 사이토 후쿠의 이야기 솜씨에서 결정이 나버렸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형인 다케치요를 지지하는 것은 유모인 사이토 후쿠요 동생인 구니마쓰, 훗날의 타다나가를 지지하는 것은 두 형제의 어미이자 2대 쇼군 히데타다의 정실부인인 고우(江)였다. 고우는 오다 노부나가의 누이동생 오이치의 딸이었으니 노부나가를 살해한 아케치 미쓰히데의 측근인 사이토 도시미쓰의 딸인 사이토 후쿠와는 단단히 꼬인 관계일 수 밖에 없었다. 

어디 그뿐인가. 고우의 아버지는 센고쿠 시대의 명문가인 아사이 나가마사이며, 그 언니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부인이자 그 아들 히데요리의 어미인 요도 부인이었다. 노부나가의 여동생 오이치와 아사이 나가마사 사이에서 태어나서 기품있게 자라난 차차, 하쓰, 에요(고우) 세 자매의 미모는 센고쿠 시대 무장들의 흠모의 대상이었다.

 

유모 신분인 사이토 후쿠가 귀하디 귀한 오고쇼 이에야스 앞에 앉아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사이토 후쿠의 재치있는 이야기에 이에야스 역시 긴장을 풀고 귀를 기울인다. 역적의 자식이라는 비참한 꼬리표를 달고 살았던 사이토 후쿠와 오갈데 없던 인질로 어린 시절을 보내야했던 이에야스, 밑바닥에서 올라온 두 사람 사이에선 이야기가 통하는 구석이 많은 것이다.

"사람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과 같습니다. 마음에 욕심이 생기거든 곤궁한 때를 생각해야 하는 법이지요. 미치지 못하는 것은 지나친 것보다 나은 것이겠지요."

사이토 후쿠의 청산유수와도 같은 언변에 이에야스가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행여 3대 쇼군 계승 문제에 영향을 줄까 우려한 고우는 비천한 신분의 유모가 오고쇼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굉장히 못마땅하다. 가문의 정적이기도 하지 않은가. 고우는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내전(內殿)을 나오는 사이토 후쿠에게 호통을 친다. 후쿠가 뭐라고 답변을 하려고 하자 고우의 언성이 더 높아진다.

 "무엄하도다. 감히 누구 앞에서 말대꾸를!" 분을 참지 못한 고우의 손이 후쿠의 뺨을 후려친다.

문제는 "무엄하도다!"를 외치는 그 장면을 오고쇼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보고만 것.

 

그 일이 있은 후 이에야스는 손자들을 불러놓은 자리에서 쇼군의 후계자를 확실히 정해버린다. 형인 다케치요를 제치고 상석(上席)에 오르려는 구니마쓰에게 이에야스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무엄하도다!"

이날로부터 3대 쇼군의 계승자는 다케치요(도쿠가와 이에미쓰)로 확정되었으며 그 어미의 총애 속에 쇼군의 자리를 넘봤던 구니마쓰(도쿠가와 타다나가)는 이후 여러 차례의 수모 끝에 29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고 말았더랬다.

 

입이 짧은 쇼군 이에미쓰가 밥을 남기자 어릴 때부터 그러했듯 유모인 가스가노쓰보네가 그 옆에 다가온다. 가스가노쓰보네의 입이 열리고 옛 이야기들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가스가노쓰보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천천히 입 안의 밥을 씹던 이에미쓰가 그녀에게 묻는다.

"그렇다면 도요토미 히데요리는 도쿠가와 가문의 혈육이었던 말인가? 그렇다면 그가 지금 이 자리의 쇼군이 될 수도 있지 않았겠느냐?"

"쇼군의 자리는 하늘이 내리는 자리옵니다. 이야기는 이야기로 받아들이소서."

귀로는 이야기를 들으며 입으로 연신 밥을 먹고 있는 이에미쓰를 바라보는 가스가노쓰보네의 눈이, 자식을 바라보는 어미의 눈처럼 자애롭다.

 

한국현대사로 비유하면, 10 26의 주역 김재규 측근의 딸이 가문이 몰락하는 비극을 딛고 상도동 YS계의 여비서가 되어 퇴임을 앞둔 YS와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기까지 하는데 그녀와 YS가 밀담을 나눈 직후 여당의 대선후보 이회창이 아닌 야당의 DJ로 급격히 정치판의 무게중심이 옮겨졌다.... 이런 느낌이랄까. 


野望の山 慾望の江 (눈꺼풀 경련 부분) 습작

 

다카마스성 공략 중이던 하시바 치쿠젠노카미 히데요시는, 주군인 오다 노부나가가 혼노지에서 측근 아케치 미쓰히데에 의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자 긴급히 부하들을 불러모은다.

 

"이 자리에서의 일을 가슴 속에 넣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라. 누구에게도 발설하면 안된다."

 

히데요시는 마치 경련이라도 일어난듯 왼쪽 눈을 깜빡거리며 수하 장수들에게 얘기를 한다. 눈을 찡끄리자 가뜩이나 주름 가득한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진다.

 

성주 시미즈 무네하루가 자결하는 것으로 다카마스 성 공략은 끝이 난다. 히데요시는 질풍처럼 말을 달려 아케치 미쓰히데군을 소탕한다. 주군인 노부나가를 암살하고 그 수하인 히데요시의 군사들에게 쫒기던 아케치 미쓰히데는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어진다.

 

- 이런 식으로 히데요시의 습관을 거론한 다음 센노 리큐 http://ko.wikipedia.org/wiki/%EC%84%BC%EB%85%B8_%EB%A6%AC%ED%81%90 얘기로 넘어간다. -

 

다도의 명인이었던 센노 리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다도 스승이기도 하였다. 다도, 차(茶)라는 것은 건강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 것으로 다도의 명인이었다면 의학에도 조예가 깊을 수 밖에 없다. 히데요시가 센노 리큐와 함께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던 중 자신의 건강 문제에 대해 얘기를 한다. 히데요시의 몸으로는 아이를 만들 수 없다는 말이 센노 리큐의 입을 통해 나온다. 짐짓 침착한 척 냉정을 유지하려는 히데요시의 눈꺼풀이 마치 경련이 일어나듯 떨리기 시작한다. 다카마스 성을 포위하고 있던 상황에서 수하장수들에게 그랬듯이 왼쪽 눈을 찡그리며 센노 리큐에게 당부한다.

 

"이 자리에서의 일을 가슴 속에 넣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라. 누구에게도 발설하면 안된다."

 

1589년 히데요시의 측실 차차(훗날의 요도 도노)가 쓰루마쓰(鶴松)를 출산한다. 항간에는 히데요시의 자식이 아닌 오노 하루나가의 자식이라는 얘기가 돌기 시작한다. 그토록 여색을 좋아하던 히데요시가 다른 여자의 몸에서는 아이를 얻지 못하다가 뒤늦게 본 젊은 측실의 몸을 통해 아이를 얻었다니 이상한 소문이 돌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성 내에 괴이한 소문이 돌자 히데요시는 자신이 불임의 몸임을 확언했던 센노 리큐를 가장 먼저 의심한다. 히데요시의 의심을 받던 센노 리큐는 다도인으로서의 명예를 걸고 자신의 결백함을 주장하려 하나 그에 대한 히데요시의 미움은 더해질 뿐이다. 센노 리큐는 1591년 할복으로 목숨을 끊고 만다. 

 

쓰루마쓰가 죽고난 뒤 히데요시는 자신의 측실 차차를 이에야스의 내실로 몰래 들여보낸다. 하녀로 꾸민 차차를 품에 안은 이에야스. 여자의 당당한 태도에 의심을 품은 이에야스는 심복인 닌자 핫토리 한조를 통해 차차의 정체를 알아낸다. 그 이틀날 히데요시는 이에야스를 자신의 내전으로 불러 복어 요리를 대접한다. 맹독을 품고 있는 복이기에 자칫 요리에 신중을 가하지 못할 시 큰일을 치룰 수도 있는데다가 당시 불륜의 쾌감을 복어 요리의 미감(味感)에 비유하기도 했던지라 당대의 권력자 두 사람, 히데요시와 이에야스가 먹기에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면이 있었다. 게다가 이에야스라는 남자는 평소에도 자신의 건강에 신중하기로 유명한 사내가 아니었던가. 독이 있을지도 모르는 요리를 눈 앞에 두고 이에야스가 주저하고 있자 히데요시가 웃으며 말을 건넨다.

 

"괜찮소. 차차도 맛을 봤소이다."

 

히데요시가 고개를 돌려 내전에 들어선 여인을 바라본다. 이에야스도 히데요시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다. 이에야스의 눈에, 자신과 하룻밤을 보낸 여인이 그날밤과 달리 곱게차려 입은 몸으로 시녀들과 함께 서있다.

 

"어젯밤 일은 가슴 속에 넣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시오. 누구에게도 발설하면 아니될 것이외다."

 

웃으며 말은 하고 있지만 히데요시의 눈꺼풀은 떨리고 있었다. 그럴 때면 묘하게 찡그러지는 왼쪽눈이었다. 이에야스와의 하룻밤의 정사가 이뤄지고 난 뒤 차차(훗날의 요도도노)는 태기를 느꼈다. 아이의 이름은 히로이마루(拾丸)라고 붙여졌으니 그 아이가 도요토미 히데요리, 훗날 오사카 성에서 그 어미 요도도노(차차)와 함께 자결한, 바로 그 아이였다. 

 

두 번에 거친 조선 정벌이 실패로 끝나갈 무렵 히데요시의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게 되자 히데요시의 침전으로 중신들이 모인다.

 

“내대신(內大臣)인가? 이리로 가까이 오게. 할 말이 있네.”

 

그렁그렁 가래가 막힌 목소리로 이에야스를 부른다.

 

“예.”

 

이에야스가 히데요시의 머리맡으로 가까이 다가간다.

 

“히데요리는 자네 아들일세. 우리의 아들이야.”

 

히데요시는 이에야스에게만 들릴 수 있는 작은 목소리로 끊어질듯 끊어질듯 힘들게 얘기한다. 히데요시의 왼쪽 눈꺼풀이 경련을 일으키듯 떨리기 시작한다. 히데요시의 기력이 생생해서 말을 더 이을 수 있었다면 아마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을 것이다.

 

"가슴 속에 넣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시오. 누구에게도 발설하면 아니될 것이외다."

 

“컥!” 가래 덩어리가 넘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부탁이 있네.”

 

주위 사람들이 들을 수 있게 보다 큰 목소리로 얘기한다. 죽음이 임박한 노인네의 목소리로는 들리지 않는 또렷한 목소리였다. 앓아누운 뒤로 이 노인이 이렇게 큰 목소리를 낸 적이 있던가. 대신(大臣)들이 히데요시 곁으로 바짝 다가간다.

 

“히데요리를 부탁하네.”

 

고개를 들고 미음을 먹는 것조차 힘들어했던 노인이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을 꿇고 애원한다. 죽음이 임박한 노인이 가련한 몰골로 후사를 부탁한다.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어 울고 또 운다. 이때 마지막 기력을 다 썼을까 히데요시는 이날 이후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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