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건플라 잡담 토이

예전에, 건플라를 일본 갔다 오는 길에 선물로 사주겠다던 분이 있었는데, 내게 선물하기 위해 사놓았다는 건플라를 국내의 모 지인에게 맡겨놓고 있고 그 지인이 내 집 주소로 배송을 하는 방식으로 선물을 받도록 되어 있었다만. 그 배송이란 것이 몇 달 째 미뤄지고 있고 그때 받기로 된 HGUC 뉴건담은, 당시 최신제품으로서의 상큼함을 풍겼으나 이제는 HWS 버전에 밀리고 하이뉴에 치이는 묘한 신세가 되어버렸다. 뉴건담 말고 또 하나 택하였던 킷이 쟈크 FZ였으니 프로포션이 어쩌니 저쩌니 세산의 평가가 냉혹함에도 불구하고 혼자만의 상상에 빠져 즐거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받을 수는 있을 것인가?
받을 수 있음을 전제로 이것저것 부탁을 들어줘야 되는 신세로 전락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점점 그 택배를 기다리는 기간이 길어지는 가운데 잡다한 생각들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니, 직접 취미과학에 가서 건플라들을 훑어본 뒤 일단 내 돈 주고 쟈크FZ를 구입하기로 했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FZ 킷만큼은 손에 쥐는대로 빨리 만들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라 급하긴 급했었다.

일전에 취미과학에 갔었을 때 진열장에서 보았던 쟈크FZ를 구입하려고 하였으나 세간의 반응이 좋지 않았던 그 킷이 그새를 못 참고 팔려버린 것이 아닌가. 꿩 대신 닭이라고 다른 킷이라도 사려고 했었으나 환율의 변동 속에 예전의 가격보다 몇 천원씩 올라버린 가격표에, 진열장에 있는 HGUC 킷은, 몇 번을 만들어서 다시 만들기 귀찮은 퍼스트/마크투와 내가 지출 할 수 있는 가격대와 맞지 않아 접어야만 했던 캠퍼, 내 스타일은 아닌 가쟈 D 등등에 그리고 이름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OO킷과 Seed킷이 눈에 뜨였기에 전부 패스하고 길 맞은 편 교보문고로 들어섰다.

교보문고에 들어서니 만화책 진열장이 눈에 띄어, 평소 흥미를 느끼고 있었던 화봉요원, 건담 오리진, 센고쿠 등을 찾아보았으나 없었다. 만화 오다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 시리즈는 교보문고에도 있었을터나 그 시리즈는 주거래 서점인 '영광도서'에서 구입할 생각으로 있으며 그 책을 구입해서 마일리지를 적립하면 (10,000 이상 마일리지를 적립하면 사용가능하다는데 현재 8,577점인지라) 몇 권 구입하지 못해 조만간 '만원'어치 마일리지를 적립하게 되는 것이다. 만원어치 마일리지가 적립되면 사용할 수 있게 되니 특별한 일이 아닌 이상 8557점의 영광도서와 역시 마일리지를 모으고 있는 Yes24에서 지출해야되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 오다 노부나가 1,2편 도쿠가와 이에야스 3,4부 총 4권을 살 것이 남아 있다. Yes24에서는 오다 노부나가 시리즈가 품절이었던지라 오다 노부나가 시리즈 중 나머지 두 권은 영광도서의 몫일터. 
그러니 별다른 사고 싶은 책을 발견하지 못해서 만화책이 꽂혀진 서가 주변을 빙빙 돌기만 하자 이상하게 본 남자직원이 나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그에게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여기 직원이세요?" 
"아. 예."
"건담 오리진이라는 책을 찾고 있는데 이 코너에 있다는데 안 보이네요"
"아, 제가 직원이 아니라서, 직원분에게 물어보겠습니다"
"직원이 아니세요?"
"책 담당이 아니라서.... "
"그럼 도난 방지...."
"아, 예......"

서점(정)직원에게 물어보니 원래 그 코너에 있던 책인데 다 팔려서 없는 상태라고 하였고, 이에 나는 책을 포기하고 책 대신 교보문고 한쪽 벽에 쌓인 건플라 박스 쪽으로 걸어갔다. 취미과학에 있던 킷들과 비슷한 비율로 OO 시리즈와 Seed, HGUC 퍼스트건담이 진열되어 있었다. 사고 싶은 생각이 없는 물건들이라서 그것 역시 패스하고 밖으로 나왔다.

각설하고, 플라를 모으는 것도 아니고 안 모으는 것도 아니고 .... 그 수수께끼의 인물은 일전에 나와 동행하면서, 자신을 둘러싼 양파 껍질 하나를 깠다. 그와 함께 걷고 있었던 나는 그 껍질이 매워 눈물 콧물 기침을 연발하였고 며칠간 띵한 상태로 있다가 그와 나의 만남은 과연 무엇이었나 하는 의문마저 생기고 말은 상태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인간 관계에 있어서는 '신뢰'가 중요하다. 신뢰는 진실, 사실을 상대방에게 말해줌으로써 이뤄지는 것이다.

그는 쟈크FZ가 아니라 다른 킷을 구입해놓은 것 같다고 얘기했다. 어쩌면 기라도가, 어쩌면 쟈크-I 일 것이다. 그날 부산역에서의 만남에서 점심값은 내가 지불했다. 3천원짜리 밀면과 3천원짜리 만두가 있는 식당이었는데 그는 3,500원짜리 곱배기를 먹었다. 그는 내게 선물이라며 쇼핑백을 내밀었고 나는 그 선물이 몇 달 전부터 그가 내게 얘기했던  플라모델이겠거니 했으나 그가 내게 건내준 것은 지나간 일본 신문 몇 부와 그 신문 사이에  꽂힌 일본 AV 처자들의 사진집이었다. 일본 신문은 내가 한 번 보고 싶다고 얘기했던 것이라서 어쩔 수 없는 것이나 AV 사진집은 처치곤란한 물건으로.... 사진 속 여자들은 갓 AV 세상에 들어선 신인들. 책장을 펼쳐놓으니 개콘 출연자들 수준의 외모의 여자들이 옷을 벗고 곤란한 행동을 재현하고 있다. 얼굴이면 얼굴, 가슴이면 가슴, 엉덩이면 엉덩이, 항문이면 항문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드는 부분이 없다. 전혀 예쁘지도, 전혀 에로틱하지도 않았다.

결혼할 나이가 되었으니 이런 것 좀 봐도 된다고 그 사진집을 내게 건내주었지만, 나는 오프라인에서의 내 '캐릭터'가 AV, 야동, 포르노 같은 방향으로 굳어지는 것을 원치 않는데다가 사진집의 사진의 퀄리티마저 이러니.... 씁쓸함이 남는다. 내 방 컴퓨터로는 이것저것 보기도 하지만 적어도 나는 어릴적부터 페미니스트를 자칭했을 정도로 여성의 인권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오프라인에서 이러한 선물을 받게 되거나 마치 포르노에 찌든 인간인양 남들에게 비춰질 때면 씁쓸하게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와 만남을 갖은 뒤 2주 후, 몇 년째 책상 밑에 보관 중이었던 HGUC 파워드짐의 박스를 열고 비닐을 벗겼다. 쟈쿠 FZ를 기다리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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